매일신문

지방분권으로 가자-중앙집중 깨자 움직임 가속화

오는 4월8일 또하나의 전국적 운동조직이 출범한다. '전국 자치연대'. 지방분권이 새로운 세기의 화두로 떠오른 지금 새삼 눈길을 잡는 조직체다.

자치연대는 전국의 지역 활동가들이 손을 잡는 연합체다. 제안자는 이재용 대구 남구청장, 김두관 경남 남해군수, 조승수 울산 북구청장 등 지방자치단체장을 비롯해 지방의회 의원, 시민단체 대표 등 45명. 지난해 11월말 모임을 갖고 올바른 지방자치 정착을 위한 전국적 네트워크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조직 결성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자치연대 활동의 기본방향은 △분권의 확대를 위한 제도 개혁운동 △주민참여의 제도화와 직접민주주의 강화 △지방정치 개혁 등이다. 지역적인 고립을 넘어 각자의 경험과 전망을 공유함으로써 전국적인 실천력을 담보해나간다는 계획이다.

자치연대 출범은 단순히 지방자치에 관계된 사람들의 모임이 탄생한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갈수록 심화하는 중앙집중과 지방의 쇠락을 더이상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지방 스스로의 살길을 본격화하는 새로운 출발점이다.

이같은 움직임은 이미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대구사회연구소를 비롯한 영호남 4개 학술단체들은 '분권과 혁신'을 기치로 내걸고 지난해부터 활발한 움직임을 시작했다. 이들은 중앙집중의 문제점을 논리적으로 비판하고 올바른 지방자치를 위해 요구할 수 있는 내용과 현실성 있는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논의에 불을 붙이고 있다.

대구 부산 광주 등 8개 시·도의 기획관리실장들은 지난해 7월 부산에서 회의를 갖고 시·도지사의 모임인 '영호남 국토균형발전 추진협의회'와 '실무추진협의회'를 발족했다.

수도권에 밀려 점점 변방으로 낙후하고 있는 영호남의 앞날을 위해 국토균형발전 과제와 정책대안, 추진전략을 발굴하거나 수립, 중앙을 향해 따지고 요구하겠다는 취지다. '주지 않으면 가져오는 지방' 'No라고 말할 수 있는 지방'이 되겠다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윤덕홍 대구대총장은 "지방은 서울의 식민지"라고 잘라 말하고 있다. 대구의 문제를 서울에 가야 해결을 볼 정도로 대구의 정치와 행정은 지역사회의 산적한 현안들을 해결하는데 전혀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당연히 인구와 인재, 경제력, 정보, 문화, 지식 등 모든 분야의 서울편중이 원인으로 작용한다. 윤 총장은 영호남 지역갈등도 사실은 서울에 있는 영호남 출신 실력자들의 이해관계로부터 출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지방분권 문제는 더이상 중앙에, 정치권에 맡겨둘 수 없는 시급한 과제가 된 것이다. 지방 스스로 힘을 모아 일어나지 않는 한 지방분권은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방법으로 지방분권이라는 '떡'을 가져와 나눌 수 있을까. 학자들의 주장은 비슷한 지향점을 향하고 있다.

최장집 교수(고려대 정외과)는 "지방분권은 더이상 정부의 정책결정자들이나 정치엘리트들에게 맡길 수 없다"고 못박았다. 지난달 열린 아세아문제연구소 민주주의 포럼에서 그는 분권화를 가능하게 하는 힘의 원천으로 '지방의 시민사회'를 꼽았다. 지방에 있는 여러 시민운동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실천을 통해 이를 주도하지 않으면 지방분권은 결코 해결가능한 국민적 사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시민사회 활성화를 이끌어가는 노동운동, 환경운동, 지식인운동, 시민운동, 인권운동 등 모든 종류의 운동단체들이 중앙집중에 문제를 제기하고 연계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김형기 대구사회연구소장은 지역 중심의 새로운 국가발전 모델 구축을 위해 '지역공동체들간의 자유로운 연합'을 제시했다. 이는 지방정부간 연합, 지역 시민사회간 연합, 지역 기업간 결합을 포함하며 협력과 경쟁을 가능하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그는 "참여, 연대, 생태라는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는 지방분권과 지역혁신을 통해 자유로운 지역공동체를 건설하고 이들간의 연합체를 결성하는 것이 21세기 새로운 발전모델의 전체적 윤곽"이라고 말했다.

이미 중앙집중에 위기감을 느낀 지방 각계의 자발적인 모색은 힘차게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물론 분야별로 힘이 분산해 있고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제대로 이끌어내지 못한다는 한계도 안고 있지만 '지방의 반란'은 점차 그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지방분권의 성패는 앞으로 이들 역량을 어떻게 모으고 시민참여를 얼마나 유도해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에는 각 분야 시민단체는 물론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 역시 힘을 보태야 한다. 아직 우리 실정에 지방자치단체들이 중앙을 향해 대놓고 투쟁을 할 단계는 이르지 못했다지만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일고 있는 지방분권 운동에 대해 적극적 지지 협조의 손짓을 사릴 때가 아니다. 중앙정부와 정치권이 기초단체장 임명직 전환 같은 정책을 내놓으며 지방에 족쇄를 채우려 하면 시민단체와 연계해 우렁찬 반대의 목소리를 내야하는 것이다. 설사 지방자치의 시행과정에서 갖가지 문제점이 적지않게 드러나더라도 지방분권의 위축을 가져오는 정책에는 단호한 반대의 깃발을 높여야 한다.

지방분권으로 가기위해서는 지방민들의 의식 변화도 중요한 관건이다. 대구와 경북의 경우는 특별히 그 점에 귀기울 여야한다는 지적이 많다. 현재처럼 연고주의와 배타성이 어느 지역보다 강한 반면 합리성은 결여했다는 비판이 무성한 풍토에서는, 지방분권의 또 하나 축인 지방혁신이 요원하기 때문이다. 무턱대고 부정하기보다는 비판의 원인을 냉정하게 따져보고 스스로 떨쳐버릴 부분은 떨쳐내야 하는 것이다.

지방분권은 이제 모든 지방민들에게 최대의 화두로 떠올라야 한다. 국가발전을 위해서도 지방분권은 시급한 과제다. 이를 위해 지방 구성원 각자가 떨쳐 일어서려는 절박한 몸부림과 함께 비(非)중앙인 전체의 목소리를 모으는 길만이 몰락의 벼랑에 몰린 지방의 유일한 살길임을 뼛속깊이 인식해야 한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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