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우리 인간에게 영원한 모성(母性)일 뿐 아니라 위대한 교사다. 자연에는 그 나름의 뚜렷한 질서가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계절의 질서가 있고, 뿌려서 가꾼 대로 거두는 수확의 질서가 있다. 가뭄이 심하면 비를 내려 해갈시키고, 홍수가 나면 비를 멎게 하여 날이 든다. 바람을 일으켜 갇혀 있는 것을 풀어주고 낡은 것을 떨어뜨리며, 끊임없이 흐르게 하여 부패를 막는다. 밝은 낮에 일하면서 쌓인 피로를 덜어 주기 위해 어둠이 내려 쉬도록 해준다. 이와 같은 자연의 질서에 우리들 인간은 순응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면서 우리 삶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 되도록 자연으로부터 배우고 익혀야 한다. 자연스러운 것이 바로 건강한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은 나무와 물과 흙과 바위로 이루어진 단순한 유기체가 아니다. 그것은 커다란 생명체이며 시들지 않는 영원한 품속이다. 자연에는 꽃이 피고 지는 자연 현상만이 아니라, 시가 있고 음악이 있고 침묵이 있고 사상이 있고 종교가 있다. 인류 역사상 위대한 사상이나 종교는 벽돌과 시멘트로 쌓아 올린 교실에서가 아니라, 때묻지 않은 대자연 속에서 움트고 자랐다는 사실을 우리는 상기할 필요가 있다. 나무들이 청청한 가지를 펼치고 있는 숲 속에서, 시작도 끝도 없이 도도히 흐르는 강변에서, 혹은 밤과 낮의 기온차가 심한 침묵의 사막에서 위대한 사상과 종교가 움트게 됐다는 사실은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을 것이다.
육신에 탈이 나거나 병이 들면 병원을 찾아가 치료를 받지만, 영혼이 지쳐 있거나 병들어 있을 때는 병원을 찾아가도 쉽게 낫지 못한다. 어린 아이가 엄마의 품을 찾아가듯이 자연의 품속에 안겨, 자연의 소리를 듣고 그 질서를 우리 것으로 받아들일 때 다시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 현대인들이 가장 많이 앓고 있는 정신 질환인 노이로제는 약물 치료로는 나을 수 없는 문명의 병이다. 자연과 더불어 가장 자연스러운 생활을 통해서만 정신 상태는 자연스럽게 제 기능을 하게 된다. 대지와 수목과 화초와 물을 가까이 하면 사람의 정신 상태는 지극히 평온해진다. 조급히 서둘 필요도 없이 질서정연한 생명의 바다에서 헤엄을 치면서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다운 삶인가를 스스로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자연은 말없이 우리에게 많은 깨우침을 준다. 자연 앞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얄팍한 지식 같은 것은 접어두어야 한다. 그리고 침묵해야 한다. 그래야 침묵 속에서 '우주의 언어'를 들을 수 있다. 이 침묵 속에서 창조의 비밀과 사랑의 신비를 캐낼 수 있다. 하나의 씨앗이 대지에 묻혀 움이 트고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때까지의 그런 인내와 침묵이 자연 속에서는 절대로 필요하다. 왜냐하면 자연 자체가 원초적인 침묵이기 때문에 자연의 실체를 인식하려면 무엇보다도 침묵이 전제되어야 한다. 태초에 말씀이 있기 전에 무거운 침묵이 있었음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침묵이야말로 자연의 말이고 우주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뛰어난 사상과 위대한 종교는 가지에서 또 다른 가지를 치는 시끄러운 언어에서가 아니라, 자연의 침묵에서 싹텄다는 사실도 우리는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사막의 교부들이나 불교의 선사들이 우주의 언어인 이 침묵 속에서 성장하면서 거듭나게 됐다는 사실은, 말을 참지 못하고 함부로 쏟아놓ㅡㄴ 현대의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다.
어떤 고행자가 사막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한 성자를 찾아가 물었다. '스승님, 제가 영생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되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성자는 대답하기를 '만일 그대가 그대의 영혼을 구하고자 한다면 누군가 말을 걸기 전에는 결코 먼저 말을 하지 말라'라고 하였다. 그들은 침묵의 상대적인 중요성을 확실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하기
▲서구 문화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신성과 세속의 분리, 정신과 물질의 분할, 개인주의의 성장, 물질적 발전에 대한 지나친 예찬 등을 가져왔고, 그 결과 인류는 환경 오염과 생태계의 파괴라는 미증유의 위기를 자초하게 되었다. 제시한 법정 스님의 글을 읽고 묵상하며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재정립할 수 있는 방안에 관해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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