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박상륭문학 총체적 조망

'열명길' '죽음의 한 연구' '칠조어론' '산해기'….주제 의식의 깊이와 사유 영역의 방대함, 그리고 독보적인 형이상학적 소설. 또한 춤추는 듯 물 흐르듯 흘러가는 운문 같은 산문, 최면에 걸린 듯 만들어버리는 마력 같은 문장은 박상륭 소설의 특장(特長)이다.

집요한 장인 정신과 집념으로 한국 소설문학사에서 새로운 글쓰기 방식과 자세를 보여준 작가 박상륭(61)씨의 작품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망한 '박상륭 깊이 읽기'(문학과 지성사)가 나왔다. 40년 가까이 존재의 근원과 맞선 그의 글쓰기를 속속들이 풀어내고 정리했다.

전북 장수의 대농의 아들로 태어나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 수학, 캐나다 이민, 서점 운영 등으로 이어지는 인생 여정에서 그는 소설이라는 화두를 놓지 않았다. 고갈된 소재와 얄팍한 작가의식 등 우리 소설문단의 풍토에서 비껴나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구도자처럼 근원에 대한 통찰을 지향한 박상륭 소설세계는 그의 소설의 주제가 된 종교의 탐구에 천착함으로써 작품에 임하는 남다른 자세와 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박상륭 소설의 이력은 1963년 '사상계'를 통한 등단작 단편 '아겔다마'에서 발원해 75년 발표한 장편 '죽음의 한 연구'에서 절정을 달한다. 이어 90년 그 첫 권이 나온 이후 94년 3부 4권으로 완성된 '칠조어론'까지 난해한 형이상학적 글쓰기의 여정은 상극적 질서 안에서 생명에 대한 탐구라는 박상륭 사유의 원형질을 이룬다.

지난 97년 문예지 '작가세계'에 박상륭 문학적 연대기를 쓴 김명신씨는 "박상륭의 소설은 기독교적인 사유 체계를 그 뿌리에 두고 있다"고 보았다. 특히 단편소설들에서 그 경향은 매우 강렬하고 직접적이며 기독교적 구원에 대한 열망을 근원으로 하고 있다. '죽음의 한 연구'에서는 기독교적 사유 체계를 완성시키면서 한편으로는 불교의 한 갈래인 밀교적 정신 세계를 근간으로 삼고 있다. 이 밀교적 경향은 '칠조어론'에서 더욱 강화되어 기독교적 사유는 지양되고, 선불교적 사유가 기저를 이루게 된다. 기독교에서 라마교로 다시 선불교로 그의 종교적 사유의 핵이 변모하게 된 것이다.

박상륭 소설은 비유적 알레고리로 가득하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신화적 공간과 시간 안에서 세계의 본질과 구원의 해법을 찾기 위해 여정을 떠난다. 이런 점에서 박상륭 소설은 "형이상학적 종교소설의 형태를 띠게 됨으로써 필연적으로 난해할 수 밖에 없고, 이 점이 그의 작품에 대한 이해를 어렵게 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서종철기자 kyo425@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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