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에 읽은 이솝우화는 재미있기도 하지만 그 속에 숨은 의미 때문에 오랫동안 기억에 남게 된다. 요즈음 우리 생활 속에서 나도는 한 가지 우화가 의미를 제공하기에 여기에서 한번 생각해 보고자 한다.
황사가 잔뜩 끼인 날 어느 동네에서 A와 B라는 두 청년이 하는 이야기이다. A청년이 황사 낀 하늘에 희멀겋게 떠있는 해를 보면서 저 해 좀 보라고 B청년에게 이야기한다. B청년은 하늘을 올려보더니 A에게 대꾸하기를 저기 어디 해가 있느냐고 반문하며, 그것은 해가 아니라 달이라고 주장한다. 이 때부터 A와 B는 자기 주장을 하며 하늘에 떠있는 것은 해다, 아니다 달이다, 하고 논쟁을 벌인다. 마침 그 때 옆을 지나가는 사람이 있기에, 아저씨 하늘에 떠 있는 것이 해입니까, 달입니까, 하고 묻게 된다. 물음을 받은 이 사람은 한참 생각하더니, "나 이 동네 안 살아서 모르겠네요"하고 답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예전의 이솝우화와 같이 우리 주위를 돌이켜 보며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요사이 우리가 많이 이야기하는 4대 개혁을 보자. 먼저 공공개혁이라고 하여 정부관서를 비롯하여 공기업 부문까지 개선되고 바뀌어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고 누구나 생각하고 있다. 즉 누구든지 공공개혁의 기본 답은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공공부문의 개혁이 지지부진한 것을 보면 그 답은 바로 서로가 개혁을 주장하면서 논쟁하지만 결국은 "나 그 동네 살지 않아 모르겠네요"하면서 피해버리는 것이다.
금융부문의 개혁도 그렇다. 금융개혁의 당위성은 누구나 다 인정하면서도 구체적인 실천방안에 들어가면 논쟁만 계속하고, 각자에게 유리한 답만을 찾다가, 국민들이 정답을 물으면 "나 이 동네에 안 살아서 모르겠네요"식의 답을 하면서 피해버리는 것이다.
재벌개혁 또한 그렇다. 우리 나라 대기업들의 경영방식이나 문어발식 확장은 글로벌 스탠더드의 관점에서 적절치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 부실기업의 정리에서 워크아웃이나 은행의 부채인수가 어떤 도덕적 해이를 낳게 되는지도 알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정책이 결정되고 집행되는 과정을 보면 서로 옳다고 논쟁은 많이 하나 최종 단계에서는 "나 이 동네에 살지 않아 모르겠어요" 하는 식으로 답이 도출되는 모습이다.
노사개혁에서도 모든 사람들이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나 이동가능성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노사정 관계자들이 모여서 논쟁하는 것을 보면 직접적으로 정답을 찾기보다는 각자의 주장만을 하고 옆의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나 이 동네 안 살아서 몰라요" 하는 식으로 피해나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나 이 동네에 안 살아서 몰라요"하는 식의 무책임한 태도는 우리의 기업경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경영혁신이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느끼면서도, 각 부서나 사업부들은 자기 부서의 이익이나 이해관계만을 중시하면서 의사결정이나 문제의 해결에 있어서는 서로 책임을 전가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기업의 의사결정이나 개혁의 실행이 미루어지게 된다면 오늘날과 같이 급속도로 변하는 무한경쟁의 시대에서 당연히 뒤떨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모두가 논쟁을 하면서도 답을 물어보면 위와 같이 책임을 회피하는 답만을 하게 되면 정답은 찾을 수도 없을 뿐 아니라 결국은 모두가 어리석은 답만을 되풀이하면서 시간을 보내게 되고 결국 경제만 악화되는 악순환을 거치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우리 경제운용에서 필요한 것은 정답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이다. 해보고 달이라고 하는데, 엉뚱하게 "나 여기 안 살아서 몰라요" 하는 식으로 책임 회피만 하는 대처법은 우리 모두에게 악순환의 고리만 제공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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