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세기 동안 생명과학은 엄청난 속도로 발전했다. 140여년 전 멘델이 유전의 법칙을 발표했고, 100여년 전엔 염색체 안에 유전물질이 들어있다는 것이 알려졌으며, DNA 구조가 밝혀진 것은 50여년 전, 유전정보 해독기술과 유전자 조작 기술이 개발된 것은 25년 전, 인간 게놈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은 10년 전, 그리고 그것이 거의 완료된 것은 바로 얼마 전 일이다. 이와 관련해 생명공학 산업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발달하고 있다. 돼지 췌장에서나 짜내던 인슐린, 사망한 인간의 뇌하수체에만 분리할 수 있었던 인간 성장호르몬. 때문에 고가이고 위험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 물질들은 이제 대장균에서 대량으로 생산되고 있다. 치료가 불가능했던 유전병의 경우도 정상 유전자를 환자에 집어넣어 고치려는 일부 임상시험이 이미 이뤄지고 있다.
21세기에는 이러한 생물산업을 선점하는 나라가 선진부국이 될 것이라고 한다. 바이오테크 혁명은 모든 물질을 정복하게 될 것으로 예측되며 이미 '유전자 제국주의화'를 우려할 정도다. 미국의 생명공학 관련 회사의 규모를 가늠하는 몇 가지 지표를 들어보겠다. 미국의 생명공학 관련 회사는 99년 현재 1천283개로 이 중 348개 기업의 주식이 주식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다. 이들의 연간 수입은 180억달러(약 20조원). 믿기 어려운 사실은 이 중 절반이 넘는 99억달러를 연구비용에 쏟아 부었다는 점이다. 유전자 관련 특허로는 인가된 특허가 95년 4천여개에서 98년엔 9천여개로 2배 이상 늘었다. 특허 경쟁의 선두주자는 세계 최대 규모의 복제 유전자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는 인사이트 제노믹스다. 작년 말까지 513건의 특허를 따냈으며, 5만여건을 출원 중이다. 셀레라 제노믹스도 이미 6천500건을 무더기로 출원했다. 이처럼 유전자 특허가 미국에 의해 계속 독점되면 향후 세계 각국이 지불해야 할 로열티만도 천문학적 수치에 이를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에 비하면 원천기술에 대한 투자도 적고 바이오산업도 아직 태동기에 머물러 있다. 바이오산업은 특성상 결과가 나오기까지 장기간의 연구와 대단위 투자가 소요돼 산업화에 걸리는 기간이 10년 이상인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 정부는 게놈 프로젝트에 대해서 96~99년까지 40억원을 투자한 것이 모두인데 그나마 20여개 프로젝트에 분산 투자했다. 최근 정부는 21세기 프런티어 사업 추진과 관련, 연간 100억원씩 10년 동안 지원하기로 했다. 언뜻 보면 큰 돈처럼 보이지만 연간 수천억 내지 수조원 단위로 투자하는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에 비하면 100분의 1 수준이다. 그나마 2, 3개 연구그룹에 집중 지원해도 모자랄 돈을 수십개 과제에 분산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전혀 기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경쟁력 있는 분야를 잘 선택해 집중적으로 투자하느냐에 달려있다. 즉 '한국형 바이오산업 모델'을 개발하는 것이다. 인간게놈 연구의 경우 한국인에게 빈발하는 질병 유전자의 기능을 알아내 특허를 선점하고, 식물게놈 연구는 한국 고유의 토종식물에 대한 기능 분석과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여 신약개발에 이용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우리 만이 가진 고유기술을 확보한 상태에서 선진국과 기술협력 및 정보공유를 교섭할 때 국제경쟁력 있는 연구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신기술의 산업화 촉진에는 벤처기업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99년까지 수십개에 불과하던 국내 바이오벤처가 지난해 초 200여개에서 지난 연말 약 350여개로 늘어나서 현재 증가세를 멈추고 있는 상태다.
대구도 전자산업과 함께 생명공학산업을 미래의 중추산업으로 육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생명공학에 관여하는 한사람으로서 매우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현실은 국내에서도 서울은 물론이고 타도시와도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다. 대전이나 광주와 같은 대규모 연구단지를 끼고 있어 연구환경과 인력을 배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심지어 춘천만큼도 투자할 수 있는 여력이 되지 않는 도시에서 하루 아침에 생물산업의 핵심거점으로의 육성을 꿈꾸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진정으로 대구의 생명공학 발전을 원한다면 지금부터라도 과감한 투자가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김문규 교수(경북대 의대 면역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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