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북한에서도 김소월 시인과 함께 최고의 애국시인으로 꼽히시는 분입니다·"
"이곳(남한)에서도 아버지는 존경받는 분이다. 구인아, 네가 살아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26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센트럴시티에서"반세기만의 상봉을 한 서정시인 정지용鄭芝溶)의 아들 구관(73)씨와 북의 동생 구인(67)씨는 뜨거운 안부인사를 나눈뒤 서로 약속이나 한듯 아버지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구인씨는 "20년대 창작활동을 하셨던 아버지는 조선작가동맹(KAPF) 소속도 아니셨고 혁명적인 시를 쓰시는 분도 아니셨지만 주체문학적인 관점에서 다시 빛을 보게됐습니다"며 "애국시인의 아들이라는 점 때문에 많은 은덕을 입었습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구인씨는 "아버지는 북한으로 오시던 중 남한의 소요산에서 폭사하셨다"며 예전 북한 문학계의 주장을 되풀이, 정지용 시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은 다시 한번 미궁에 빠졌다.
동생을 만나기 전 "월북이냐, 납북이냐,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느냐를 따지지 않고 동생을 만난다는 사실에 만족하겠다"고 말했던 형 구관씨는 구인씨가 아버지 얘기를 하는 동안 계속 고개를 끄덕였다.
6·25 발발 당시 정지용 시인은 교직에서 물러나 서울 녹번동(옛 경기도 녹번리)자택에서 두문불출하며 글읽기로 소일하던 중 "시내에 다녀 오겠다"며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
구인씨는 배재중학교 재학중이던 50년 전쟁 발발 직후 아버지가 행방불명되자 "아버지를 찾으러 간다"며 집을 나선 뒤 연락이 끊겼다.
구관씨는 "행방불명된 아버지를 찾겠다고 집을 나서는 네 뒷모습을 본 뒤 50년이 지나서야 다시 만나게 됐구나"며 동생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구인씨는 "형님 많이 늙으셨습니다"라며 근황을 물었고 구관씨는 "아버지 이름을 딴 지용문학회 일을 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구관씨는 "이곳에서도 아버지는 존경받는 시인"이라며 "매년 중국 연변에서 지용문학상을 수상하고 아버지 고향인 충북 옥천에서'지용제'를 연다"고 설명하자 구인씨는 얼굴에 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구관씨는 "북한 학생들도 아버지 시를 배운다는데 아버지 시집은 갖고 있니?"라고 물었고 구인씨는 20년대에 쓴 시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또 구관씨는 "내년 아버지 탄생 100주년에 맞춰 일본에서도 아버지의 시비를 세우려고 한다"면서 동생에게 정지용 전집을 선물했다.
구인씨는 형이 준 정지용 시인의 시집을 끌어안으며 "아버지가 남한에서 이렇게 추앙받는지 몰랐습니다"면서 "북한에서 헤어진 가족과 고향을 그리면서 50년간 아버지의 시를 외우고 또 외웠습니다"고 감격스러워했다.
구관씨는 너무나 변해버린 동생 앞에서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줍던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히랴···"라는 정지용 시인의 시'향수'를 암송했고 지그시 시를 경청하던 동생은 다시 한번 눈시울을 붉혔다.
구인씨는 양강도 방송위원회 중서군 주재원 책임기자로 일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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