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어지럽던 고려 말기에 괴이한 짐승이 등장했다는 소설이 있다. 조선시대 후기에 씌어진 것으로 알려진 '불가살이전(不可殺爾傳)'에 나오는 이야기지만 '불가사리'라는 괴물이 바로 그 주역이다.
몸은 곰을 닮았고, 코는 코끼리, 눈은 코뿔소와 비슷한 이 괴이한 동물은 쇠를 삼키고 점점 커져서 세상을 소란케 했다. 지나친 비약이겠지만, 요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우리의 위장을 불가사리의 그것 쯤으로 여기는지도 모르겠다. 뱃속에 돌이 든 홍어, 납이 든 꽃게, 쇳가루를 섞은 고춧가루, 모래가 든 조기, 황산 참기름, 살충제 뿌린 인삼, 숯가루 냉면, 발암물질을 든 묵, 골분을 먹여 광우병을 일으키는 쇠고기…. 이쯤 되면 물을 먹인 아구나 복어는 차라리 '애교 수준'이다.
우리는 이런 유해 식품들을 먹고도 죽지 않는 걸 다행으로 알아야 할 판이지만, 악덕업자들의 '신개발품(?)'은 그야말로 그 끝이 안 보인다.
최근에는 수산업자들이 역돔.잉어 등 민물 활어를 유통시키면서 상품성이 떨어지지 않도록 독성이 강한 마취제를 투약한 사실이 드러났다. 마취제를 수산업자들에게 상습적으로 팔아온 한 약품 대표를 입건해 조사 중이라지만, 활어차가 이동하는 동안 좁은 공간에서 고기끼리 부딪혀 상처를 입거나 심한 스트레스로 선도가 떨어질 우려가 있다고 해서 전문의약품인 마취제까지 써서야 되겠는가. 더구나 이 수입 마취제가 투여된 고기의 인체 유해 여부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했으나 사례가 없어 검증에 애로를 겪고 있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현행 약사법에 따르면 의약품으로 분류된 마취제를 불법유통시키면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지만, 인체 유해성이 입증되지 않을 경우 처벌할 근거마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업자들이 이런 허점을 악용하고 있는 세태는 아닌지. 아직도 쇠고기 공포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지만, 경제가 기울면서 불량.유해식품 불법제조 등 민생범죄가 마구 늘어날까 걱정이다.
선진국에서는 식품의 안전성과 관련된 범죄는 엄한 처벌을 받기 때문에 얕은 꾀를 부릴 마음조차 먹지 못한다고 한다. 식품범죄는 간접적인 살인행위에 다름 아니라는 점에서 정부는 물론 소비자들도 앉아서 당할 것이 아니라 팔을 걷고 나설 때인 것 같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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