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말기에 모범생으로 대학시절을 보낸 나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얼치기 실존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거지 수준으로 연명하면서도 모든 일이 나 자신에게 달려 있다고 몽상했다. 정치.경제.문화 영역의 온갖 갈등은 모두 유치한 표면현상들이라고 착각했다. 철학 이외의 학문은 학문도 아니라고 정리했다. 손에 잡히는 대로 철학 책들과 난투극을 벌이고 거기서 얻은 작은 전리품들로 초라한 내 의식세계를 장식했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에 무관심했던 이 불행한 의식에게 구원의 가망이 있었다면, 그것은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경제주의.출세주의마저 경멸할 수 있었다는 점일 것이다. 닥치는 대로 읽다 보니 현실의 구조적 불행에 대한 인식을 얻는 경우가 전무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만하임의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 마르쿠제의 〈일차원적 인간〉 등에서 그 경멸감의 모호한 실체를 찾을 수 있는 듯했고, 유물론의 위력을 조금씩 맛보게 되었다.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아도르노의 까다롭지만 세련된 논리에 매료되었다. 그러나 군사독재의 더러운 선물인 노예근성이 마음 한 구석을 떠나지 않았다. 마르크스주의 고전들이 해금된 후에도, 마르크스나 레닌의 강렬한 글쓰기에 감탄하고 민중연대성을 지식인의 기본 자세로서 받아들이면서도, 막연한 두려움을 쉽게 버릴 수 없었다. 80년대의 민중운동.노동운동을 목격하지 못했다면 나는 노예근성을 영원히 버릴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시기에 루카치의 준엄한 글 〈표현주의의 위대성과 몰락〉은 나에게 결정적인 지침이 되었다.
20세기 초 유럽의 문화지형을 규정했던 표현주의자들은 반시민.반폭력.반전을 표방하며 새로운 인간을 희구했다. 루카치는 표현주의자들이 시민적 계급기반을 버리지 않은 채 시민적 질서에 저항함으로써 자가당착에 빠지게 되며, 그들의 저항 역시 사이비 투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한다. 루카치의 이 글은 나의 사회적 위치와 의식 사이의 긴밀한 관계에 대해, 의식이 존재와 따로 놀 위험에 대해, 어떤 실천을 통해 나의 존재를 규정해갈 것인가에 대해 자각하도록 늘 고무한다. 이로 인한 긴장이 없었다면 나는 포스트모더니즘과 신자유주의의 탁류에 속 편히 말려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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