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의 슈퍼컴퓨터를 대신해 각 가정이나 사무실에 보급된 수만대의 PC를 연결, 강력한 가상(virtual) 컴퓨터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분산처리기술' 또는 '분산컴퓨팅'으로 알려진 이 기법은 게놈프로젝트나 신약 연구, 외계인 신호찾기 등과 같은 엄청난 양의 데이터처리가 필요한 대규모 연구에 활용되고 있다. 분산컴퓨팅은 말 그대로 1대 또는 여러 대의 슈퍼컴퓨터가 처리해야 할 일을 적게는 수천대에서 수백만대의 개인용 컴퓨터에 나눠 처리하는 방식이다.
지구상에 보급된 약 3억대의 PC 중 활발하게 작동하는 것은 10%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그냥 켜놓고 작업을 기다리는 상태이거나 아예 꺼져있는 경우다. 이들 컴퓨터를 인터넷으로 연결해 사용할 경우 슈퍼컴퓨터로 수만년간 처리해야 할 데이터를 단 몇 개월 또는 몇 년만에 해결할 수 있다. 인터넷에 연결된 PC가 사용되지 않고 있을 때 대규모 연구의 일부 과제를 전송받아 처리한 뒤 결과를 연구기관에 보내는 것이다.
분산처리기술은 원래 미항공우주국(NASA)과 일부 대학의 리눅스 사용 컴퓨터를 연결하는 것에서 시작됐다. 90년대 말 인터넷 보급이 급증하면서 컴퓨터를 병렬로 연결, 암호해독과 가장 긴 소수(素數) 계산 등에 이용되기 시작했다. 분산컴퓨팅의 막강한 잠재력을 발견한 과학자들은 이를 게놈프로젝트나, 에이즈 및 암 치료제 개발, 외계인 탐색 등 슈퍼컴퓨터로도 엄청난 시간이 소요되는 대규모 프로젝트에 활용하고 있다.
현재 수행 중인 분산컴퓨팅 프로젝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미국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대(UC Berkeley)의 외계인 탐색 연구인 세티엣홈(SETI@Home). 칠레의 아레시보에 있는 세계 최대의 전파망원경에서 수집한 외계 신호를 분석, 외계문명을 찾는 연구로 지난 99년 5월 시작된 이후 전세계 300여만명의 네티즌이 참여하고 있다.
세티엣홈은 인터넷 사용자가 연구팀 홈페이지에 접속, 화면보호기로 꾸며진 분산처리 프로그램을 전송받아 설치하면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는 시간 동안 프로그램이 자동 실행되면서 외계신호 분석작업을 수행하는 것이다.
미국 스탠퍼드대는 '게놈엣홈(Genome@home)'으로 이름 붙여진 분산컴퓨팅 프로젝트를 통해 최근 완성된 인간게놈 지도상 유전자 고유의 기능을 밝혀내기로 했다. 스크립스연구소는 분산처리업체인 엔트로피아사를 통해 변종 에이즈 바이러스를 퇴치할 수 있는 신약을 개발하고 있으며, 일부 온라인업체는 인터넷 사용자들의 컴퓨터를 분산컴퓨팅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항상 전원을 켜놓는 대신 무료 인터넷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이다.
그러나 분산컴퓨팅이 만능해결사는 아니다. 컴퓨터 사용자들이 악의적으로 수신된 데이터를 왜곡 처리할 수도 있고, 아예 파괴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또 데이터를 보내는 측이 자신의 컴퓨터를 감시하거나 개인정보를 빼내갈 수 있다는데 대한 불안을 어떻게 극복하느냐도 분산컴퓨팅 성공의 관건이다.
전문가들은 PC의 중앙처리장치만 활용하는 분산컴퓨팅이 미래엔 하드디스크까지 활용해 정보공유로 발전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음악파일을 공유하는 냅스터는 이같은 발전의 초기단계로 보면 된다. 냅스터처럼 저작권이 있는 음악을 무작정 복제하는 차원이 아니라 개인이 PC에 저장해 놓은 정보를 일정한 대가를 지불하고 접근, 사용하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이 실현된다면 개개인이 별도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어 자료를 올려놓지 않아도 하드디스크에 보관만 시켜놓으면 누구나 정당하게 찾아와 자료를 꺼내갈 수 있게 된다. 아직 분산컴퓨팅이 초보단계에 있지만 인터넷 이용자 확산과 더불어 신뢰성만 확보된다면 기존의 컴퓨터 환경을 뒤바꿔놓을 만한 엄청난 충격을 몰고 올 것이 틀림없다.
김수용기자 ks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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