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임재해교수가 새로본 신명과 해방의 노래 '우리민요'

인도 여행 중에 거지떼에 놀란 일행이 "인도에는 국회의원도 없나!" 하며 개탄하자, "국회의원이 있으니 이 꼴이지! 국회의원이 언제 거지들 살림살이 걱정하는 것 봤어? 서로 멱살잡이나 하며 국고나 축내지!" 하고 누군가 말을 받았다. 그러자 모두 "맞다 맞아!" 하고 맞장구를 쳤다.

인도에도 국회의원이 버젓이 있지만, 우리 의원들의 행태를 볼 때 그들 탓에 나라가 이 모양이라는 데 공감한 것이다. 우리 각설이들이 타령 전문가로서 거리의 예술가라면 인도 거지들은 그야말로 거지일 뿐이다.

유명 관광지일수록 거리 예술가들이 눈에 띄는데, 인도에는 관광지마다 걸인들이 진을 치고 있다가 여행자들에게 몰려들어 손을 내민다. 그런데도 관광지 이미지를 흐린다는 구실로 그들을 내모는 법이 없다. 알고 보면 그들도 단순한 구걸꾼이 아니라 가진 자들에게 자선의 기회를 주는 이들로서, 각설이들의 예술행위 못잖은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 장타령 솜씨에도 격이 있다

각설이들이 거리 예술가로서 흥행을 효과적으로 하면서 수입을 올릴 수 있는 공간이 장터이다. 장날이 되면 장바닥을 메울 정도로 많은 장꾼들이 모여든다. 거리 예술가들도 구경꾼이 많을수록 신나고 흥겹다. 우선 돈이 된다는 흥행성 이전에 구경꾼이 많으면 신바람이 절로 나서 장타령을 '냉수 동이나 마셨는지 시원시원 잘 한다'

십자 한 장을 들고나 봐/ 이장저장 다 댕기도

정읍쟁이 질이더라/ 니가 잘하면 내 아들

내가 잘하면 니 애비/ 품바품바가 잘 헌다

10까지 숫자 뒤풀이를 한 다음에 '정읍장'으로 넘어가듯이 장타령은 숫자뒤풀이와 연결되어 있기 일쑤이다. 10은 흔히 '장'이라고 하므로 숫자풀이로서 '장'자의 운(韻)을 살리면서, 장타령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설의 내용상 각설이타령과 장타령은 서로 다르되, 가락이 동일하며 형식적인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운을 따르는 시적 형상성도 일치한다.

'너는 잘 하면 내 아들이고 나는 잘 하면 너 아버지'라는 억지 같은 표현도 사실은 타령 솜씨의 위상을 말하는 것이다. 각설이들의 타령 솜씨는 부자간처럼 서로 격이 다르다. 제자가 아무리 소리를 잘 불러도 아무개의 제자에 지나지 않으나 스승은 잘못 불러도 아무개의 스승인 것처럼, 타령 솜씨도 부르기에 따라서 부자간의 격만큼 차이가 난다는 말이다.

코 풀었다 흥덕장은/ 데러와서 못 보고

광난났다 광주장에/ 약 짓는다고 못 보고

전남 함평 정점압 어른의 장타령이다. 장자 뒤풀이에 이어 장타령을 하면서 대뜸 '코 풀었다 흥덕장'이 나온다. 흥해장이라고도 한다. '흥'이 두운에 나오는 것은 코 푸는 소리를 나타내는 의성어가 바로 '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코푼 장은 더러워서 못 본다고 한다. 광주장은 두운인 '광'을 따와서 '광난 났다 광주장'으로 앞풀이를 한다. 곽란이 났으니 약을 짓느라 장을 못 본다는 것이 뒤풀이이다. 장의 이름을 중심으로 묘사된 앞풀이와, 그 앞풀이에 따라 장을 못 보는 이유가 뒤풀이로 유기성을 지니며 진술된다.

육날메투리 신천장/ 신날이 끊어져 못 본다

아궁 안에 재령장/ 재 처내기에 못 본다

색시 많다 안악장/ 곁눈질 바람에 못 본다

아이고대고 곡산장/ 눈물이 나서 못 본다

장 이름을 푸는 방식이 아주 다양하다. 신천장을 육날메투리로 풀이한 것은 장 이름의 첫음절이 '신'이기 때문이며, 재령장을 아궁이 안으로 풀이한 것 역시 첫음절의 '재'만 따와서 재의 존재상황을 나타낸 것이다. 첫음절만 문제삼되 운을 맞추지 않고 풀이를 한 것은 일종의 해체 묘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색시 많다 안악장'은 장 이름을 특별히 해체하지 않고 그대로 풀이했다. 안악장은 '아낙장' 곧 '색시장'이니 색시가 많은 장터이다. 곡산장이 아이고대고 곡하는 장이므로 눈물이 나서 볼 수 없고, 안악장이 색시가 많은 장이므로 색시들을 곁눈질하느라 장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이렇게 장 이름의 앞풀이와 뒤풀이는 아퀴가 딱 맞아떨어지므로, 장타령으로서 일정한 형식의 통일성과 내용의 유기성을 획득하고 있다.

달구리 크다 대구장/겁이 나도 몬 가고

하얗다 하양장/ 눈이 바시도 몬 가고

갯살궂은 갱산장/겁이 나도 몬 간다

대구 수성구의 태진백 어른이 부른 소리여서 장 이름이 제법 익다. 하양장은 앞풀이 말과 운이나 뜻이 다 맞는데 '달구리 크다 대구장'은 어느 쪽도 맞지 않다. 다른 노래에서는 '아가리 크다 대구장'이라고 하는데, 이는 대구(大口)의 뜻과 일치하지만, 대구와 '달구리' 곧 다리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과거에 대구를 달구벌이라 일컬었다는 옛지명을 염두에 두면 달구벌과 달구리의 사투리가 두운으로 연결됨을 알 수 있다.

오다가다 온양장/ 신~삼다 신하장

방구 풍풍 구린내장/ 오줌 찔끔 지린내장

장타령은 장 이름 풀이를 전제로 한다. 그러나 구린내장과 지린내장처럼 실제 장터와 상관없이 앞의 풀이말에 따라서 냄새나는 상황을 나타내고 그 뒤에 '장'을 붙여서 해학적인 노래말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장 이름 풀이만 한 행씩 짧게 하는 경우에는 '오다가다 온양장'처럼 두운의 일치도 중요하지만 '장'자가 들어가는 각운(脚韻)이 기본적으로 맞아야 한다. 그래야 '장'타령의 최소 요건을 갖출 수 있다.

고기전에 들어가니/ 비늘이 차지는 내 차지

떠억전에 들어가니/ 고물이 차지는 내 차지

멜치전에 들어가니/ 대가리 차지는 내 차지

노래의 내용과 형식이 앞의 장타령과 달라서 '전타령'이라 이름 붙여도 좋을 만큼 독자적이다. 장타령에서는 주로 '이러저러한 무슨 장/ 뭐가 뭐해서 못 간다'는 부정적 형식을 취하는데, 이 노래에서는 '무슨 전에 들어가니/ 뭐뭐 차지는 내 차지'라는 긍정적 형식을 이룬다. 장바닥에서도 각설이는 자기 차지를 정확하게 포착한 셈이다.

◈주어진 힘도 못쓰면서 웬 강력한 정부

그럼 정치개혁은 누구 차지인가. 준비된 대통령을 자처하던 김대중 정부는 세 돌이 지나도록 개혁입법 하나 제정하지 못한 채 여전히 권력타령에 매몰되어 있다. 이른바 DJP 공조 복원에서 다시 신3김 연대의 정계개편까지 온갖 궁리를 하느라 보안법폐지는 물론 인권법이나 부패방지법 제정에는 손을 놓고 있다. 아예 국민의 정부 대신 강한 정부를 추구하고, 민주 여당 대신에 강력한 여당을 내세우며, 정치개혁 대신에 정계개편만 꿈꾼다. 과거 군부정권이 발휘하던 힘의 논리가 그렇게도 부러운가.

한갓 권력타령이 아니라면, 국권을 확립하고 민족사를 바로 세우는 일에 주권을 강력하게 행사해야 마땅한데, 강한 정부를 주장하는 대통령부터 불평등한 한미행정협정 개정에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하고,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에도 꿀 먹은 벙어리 노릇만 한다. 도대체 쥐고 있는 막강한 권력도 제대로 못 쓰면서 강한 정부를 누구한테 요구하는가. 풀을 벨 생각도 없이 잘 드는 낫만 찾는 꼴이다. 기껏 밥줄 떨어진 노동자들을 공권력으로 몰아내는 것이 강력한 정부의 힘 자랑인가. 힘은 바르게 쓸 때 강해진다. 힘으로 관철하는 억지 정의가 아니라 정의로운 힘이 아쉬운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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