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알고 있는 책꽂이는 어떻게 현재의 형태로 진화해 왔을까. 책꽂이의 기원을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지 않고, 중세의 책들은 서가에 사슬로 묶여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많다. 학자들만이 아니라 사서들도 책과 책을 관리하는 방법의 역사, 책을 보관하고 전시하는 가구의 디자인과 발전에 대해서는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꽂이보다는 책에 대해 더 관심을 기울여 왔기 때문이다. 책꽂이라는 하부구조를 제대로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고, 관심조차 두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미국 듀크대 석좌교수인 헨리 페트로스키가 쓴 '서가에 꽂힌 책'(정영목 옮김,지호 펴냄)은 책과 책꽂이 진화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흥미있는 책이다. 네 갈퀴를 달게 된 포크, 연필 같은 일상생활의 사소한 물건들의 역사를 추적하는 독특한 작품을 소개해온 베스트셀러 작가인 그는 이 책에서 책보다는 책꽂이에 더욱 강한 눈길을 주고 있다. 책에 제목을 붙이고, 책을 세워서 꽂는다는 아주 당연해 보이는 일들이 사실은 오랜 세월동안 새로운 혁명을 거쳐 이루어진 업적임을 환기시키고 있다.
책꽂이를 이야기하기 위해서 저자는 먼저 고대 두루마리에서 출발해 평평한 파피루스나 양피지를 접어서 꿰매 철을 한 수서(手書)인 코덱스를 거쳐 현재의 책이 되는 과정을 더듬고 있다. 이런 책의 변천사를 통해 책장에 책을 꽂는 보관 방식이 수천년에 걸쳐 서서히 진화된 것임을 밝혀낸다. 구텐베르크 이전에는 책이 너무 귀해 독서대에 사슬로 책을 묶어놓았다. 인쇄술의 발전으로 책이 늘어나면서 사람들은 장식장에 눕혀두던 책들을 세워서 꽂는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책의 목록을 적어두게 되었다. 또 사슬이 꼬여 책들이 뒤섞이거나 사슬에 책이 훼손되자 책을 보관하는 다른 방법들을 모색했다. 결국 책들을 사슬로부터 풀어준 것은 인쇄술의 발명이었다.
한편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서면서 예술품이나 특별한 소장품을 전시하는데 온갖 종류의 선반들을 사용하는 사례가 점차 늘어났다. 오늘날의 방식대로 책을 보관하는 방법이 이때부터 조금씩 보편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17세기까지 서점 주인들은 낱장으로 책을 팔았다. 당시에는 접지만 해놓은 종이를 사거나 인쇄된 종이묶음을 사는 것이 관례였다. 출판업자들도 아예 제본을 하지 않았다. 다 읽고 나면 버리거나 잡지처럼 둘둘 말아 아무렇게나 보관하기도 했지만 귀한 책들은 제본을 해서 책장에 꽂아 두었다. 즉 가치가 없는 책을 제본하는 것을 창피하게 여긴 것이다.
그렇다면 책꽂이에 넘쳐나는 현대의 책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미국의 경우 중복되는 책들은 버리고 사용되지 않는, 이른바 죽은 책들은 임대료가 싼 시외의 창고를 빌어 물류 창고처럼 상자에 꽉꽉 채워 보관하는 방법을 권장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사슬에 묶인 책에서부터 전자책에 이르기까지 책과 책꽂이 진화의 이야기를 통해 저자는 "책이라는 것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단순하면서도 놀랄 정도로 복잡한 문화 유물"이라고 말한다. 지난 2천년간 책이 만들어지고, 손질되고, 보관되어 온 방식의 변화를 통해 테크놀로지의 진화과정을 이해시키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는 말이다. 책과 책꽂이 같은 테크놀로지적인 문화 유물의 역사는 비테크놀로지적으로 보이는 측면을 고려하지 않으면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게 저자의 결론이다.
서종철기자 kyo425@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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