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뺑소니 신고한 정의로운 시민

며칠 전 어둠이 몰려오는 저녁. 자가용으로 본리 네거리를 통과할 때의 일이다. 신호등의 푸른색이 황색으로 바뀌고 있었다. "다음 신호에 갈 수밖에 없구나"라고 생각하며 정지선에 멈추는 순간 '쾅'하는 소리와 함께 차가 갑자기 앞으로 밀려나갔다. 뒤따라오던 차량에 뒷범퍼를 추돌 당한 것이었다. 자동차가 횡단보도까지 밀려 나는 바람에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을 생각하여 차를 앞으로 조금 당겨 놓고 내렸다.

그 때 횡단보도 끝에서 길을 건너기 위해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초등학생인 듯한 두 명의 아이가 "아저씨, 도망갔어요"하며 서부 정류장쪽을 가리키며 급박하게 고함을 질렀다. 아뿔싸! 차량을 앞으로 조금 당겨 놓는 동안 내 차를 추돌한 차량은 어느새 신호까지 무시해 가며 서부정류장 쪽으로 도망을 간 것이었다.

뒤쫓아 가려고 했지만 아직 신호가 바뀌지 않았고 하도 잽싸게 도망가는 바람에 추격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잠시 혼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다가 '오늘은 재수가 없는 날이구나'하며 차를 몰고 50m 정도 가고 있을 때였다. 뒤에서 경적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자가용이 있었다. 길가에 차를 세우자 40대 정도로 보이는 아저씨가 "도망간 차량의 번호를 적었느냐"고 물었다. "못 적었다"고 하자 웃으며 '대구5마 ××××그레이스 진회색'이라고 적힌 메모지를 하나 내밀며 "112로 경찰에 신고를 하라"고 했다.순간 너무나 고마웠다. 세상이 복잡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로 가득 찬 것 같아도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정의의 편에 선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그 때 당황하여 그 운전자분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을 사과 드리며 지면을 빌려 고맙다는 인사를 드린다. 이런 분들이야말로 진짜로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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