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국회에서는 정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작아 보이지만 큰 의미를 부여할 만한 사건이 있었다. '국토 균형 개발'과 '지방을 살리자'는 취지로 대구 지역 국회의원들이 중심이 돼 '지방살리기 특별법' 제정에 나선 것이다. '수도권'이 아닌 '지방'을 중심에 둔 법안이 국회내에서 발의된 것은 50년이 넘는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국회를 통과할 지 여부는 불확실하지만 지방의 문제를 중앙 정치권에서 쟁점화 했다는 것 만으로도 지방사람의 눈으로 볼 땐 획기적인 일이다. 경북대 서정해 교수(경영학)는 "미국이 경제대국의 꺼져가던 불씨를 뉴욕이나 LA가 아닌 실리콘 밸리를 통해 되살렸듯 우리도 지역 발전을 위해선 국가적 차원의 법률 제정과 예산 지원이 당장 절실한 과제좭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지방 발전을 위한 한국 사회 내 '입법 운동'의 현주소는 아직은 '실패'다. 80년대 말 수도권 집중화가 국가적 문제로 떠오른 이후 몇차례 시도가 있었지만 모두가 '답 없는 메아리'로 그치고 있는 것이다.
▨지방 발전 입법 운동들
현재까지 시도된 지방 분권 관련 입법 운동은 지난해 발의된 '지방경제 살리기 특별법'을 포함 3가지. 그 시초는 89년 6공 정부가 발표한 '지역균형발전 특별법'. '한강의 기적'이라는 비약적인 발전의 후유증으로 서울은 심각한 택지와 교통난이 심화된 반면 지방의 경제력은 몰락의 징후를 보이면서부터다.
이에 따라 정부 차원에서 국가 장기발전계획을 지역균형 개발 차원에서 새로 짠다는 큰 구상 아래 정보·금융·교육 등 각 부문별로 구체적인 시행령까지 마련했다. 하지만 의욕적인 발표와는 달리 이 법안은 정치 쟁점에 가려 6공화국이 막을 내릴 때까지 빛을 보지 못했다.
98년에는 산업자원부의 지원 아래 경북대 김영호·서정해 교수 등 지역 학계가 중심이 돼 분권을 위한 또다른 '입법 운동'이 있었다. 국가적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지역 토착 기술을 활성화 시키고 이를 상업화하자는 것이 주요 골자. 또 이를 위해 지방자치단체장이 기술 혁신 운동의 총괄적 책임을 맡고 국가는 예산과 행정적 지원의 의무를 맡는 '지역기술혁신촉진법'을 만들자는 것이 내용이다. 그러나 서 교수는 "정부 내 다른 부처들간의 알력과 국회의원들의 중앙집권적인 사고 탓으로 이 법안은 국회 상정조차 되지 못한 채 폐기됐다"며 안타까워했다.
대구지역 정치권이 중심이 된 '지역살리기 특별법'도 내용면에서 국토균형발전법이나 기술혁신촉진법과 맥락을 같이한다. 단지 행정기관과 공기업 및 교육기관의 지방이전과 국세의 지방세 전환 등 기존 법안보다 가시적으로 구체화한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는 점이 차이다. 하지만 이 법안도 수도권 의원들의 반대와 농촌 지역 의원들의 무관심으로 국회 통과를 장담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지역민들의 의식부족
분권을 위한 입법 운동이 미완의 과제로 남겨진 데에는 지역민의 의식 결여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지방자치제 이후 시·도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들이 전국적인 연대를 갖고 중앙 정부에 대해 '권력 이양'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중앙과 지방의 종속 관계'라는 기본틀을 건드리진 못하고 있다. 국세의 지방세 전환과 국가사무의 지방 이전 등이 지금까지의 주된 요구 사항이다.
대구사회연구소 이창용 국장은 "분권이 당장 지역민의 삶과 직결된 문제이지만 이에 관한 목소리가 지역에서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시민단체의 움직임도 미미하기는 마찬가지다.
현재 시민단체내의 분권과 관련한 유일한 움직임은 지난해 8월 결성된 '분권과 자치를 위한 전국시민연대' 정도다. 그러나 참여연대와 경실련이 주최가 된 이 모임도 분권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 제시 보다는 지방자치 운동에 국한돼 있으며 활동도 거의 없는 실정이다.
대구참여연대 권혁장 국장은 "분권 운동의 필요·당위성은 인정하지만 막상 시민운동으로 프로그램을 펴기에는 애로가 많다"며 "서울과 지역 시민단체간의 인식차도 상당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이재협 기자 ljh2000@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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