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 하는 오후

세상사는 일이란 수많은 자리 중에서

가느다란 가지 끝에 매달려

늘 흔들리는 일이다

든든한 중심 가지에서

세월이 지날수록 조금씩 밀려와도

흔들리는 가지 끝끝마다

바늘처럼 가늘게 몸을 줄여

겨울도 퍼렇게 견디며

작게 차지하는 몸가짐으로

듬직한 기둥 하나 곧추 세워

세상의 중심을 다잡아 간다

언젠가는 흙빛으로 덜어진다 해도

- 김윤현 '침엽'

침엽은 바늘처럼 가늘고 뾰족한 침엽수의 잎이다. 침엽수의 듬직한 둥근 기둥과 줄기에서 바늘처럼 가늘고 뾰족한 침엽이 자라는 것이 아니라 되레 바늘처럼 가늘고 작은 침엽이 침엽수의 큰 기둥을 곧추 세워 간다는 시인의 전복적 상상력이 참신하다.

세상살이가 만만치 않을 때, 세상사는 일을 나무가지 끝에 매달려 흔들리는 일로 생각하다가도 결국은 세상을 이끌어가고 바로 세우는 것은 침엽처럼 작고 사소한 것들이라는 사실을 문득 깨달을 때 우리는 힘을 얻게 된다.

김용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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