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월드컵 이야기(8)-제5회 스위스대회

제5회 월드컵 축구대회는 1954년 스위스 베른과 취리히, 제네바, 로잔 등 6개도시에서 열렸다.

한국은 6·25전쟁의 폐허를 딛고 지역에서 일본을 제치고 월드컵 무대에 첫선을 보였다. 또 서독 역시 세계2차대전 패전의 아픔을 견디며 본선무대로 진출했다. 경기는 참가 16개팀을 4개조로 나눠 각조 상위 2개팀이 결승 토너먼트에 진출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한국은 본선 진출권을 따냈으나 애를 태웠다. 항공기가 없는 시대라 뱃길 밖에 없었지만 배로 갈 경우 이미 월드컵은 끝나 버릴 시점인 것이다. 마침 주한미군 사령부에서 수송기를 주선해 장장 64시간이 넘는 거리를 날아 도착했을 때는 벌써 개막식이 끝나고 경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헝가리가 예선 상대인 한국이 나타나지 않자 부전승으로 경기장을 이미 떠나버린 상태였던 것이다. 한국의 입장을 이해한 조직위원회가 헝가리를 설득, 경기를 다시 치르도록 양해를 얻어냈다.

기진맥진한 한국은 전력을 다했으나 전반 23분 폴란드 치보르의 선취골로 허물어 지기 시작, 결국 9대0으로 경기를 마쳤고 치욕적 패배후 다음날 한국은 터어키와 붙어 7대0으로 대패했다.

예선뒤 8강으로는 1조의 브라질과 유고, 2조의 헝가리와 서독, 3조의 우루과이와 오스트리아, 4조의 영국과 이탈리아가 진출했다. 특히 헝가리-브라질의 8강전은 사상 최악인 '베른 난투극'으로 기록됐다. 경기시작 3분 헝가리 히데구키의 선취골로 베른 폭력사태가 촉발됐다.

슛팅순간 히데구키는 아랫도리가 허전함을 느꼈고 관중들의 폭소가 터져 나왔다. 누군가가 그의 팬츠를 잡아당겨 찢어버렸다. 곧 난투극이 벌어졌고 후반전에서도 브라질 산토스와 헝가리 보시크 사이에 싸움이 붙어 두선수가 퇴장당했다. 결국 헝가리의 4대1 승리로 폭력시합은 끝났다.

8강전에서 서독은 유고를 2대0, 헝가리가 브라질을 4대1, 오스트리아는 홈팀 스위스를 7대5, 우루과이는 영국을 4대2로 누르고 4강전에 올랐다. 4강전에서 헝가리는 강적 우루과이를 고전을 면치 못하다 연장전에서 4대2로 이겼다. 또 서독은 오스트리아를 6대1로 대파, 헝가리와 결승고지에 안착했다.

예선에서 서독을 8대3으로 이겼던 헝가리는 우승을 노렸다. 전반17분 헝가리 푸스카스가 선취점을 뽑았고 곧 치보르가 추가골을 터뜨렸다. 반격에 나선 서독은 푸리츠 바르터의 센터링을 몰로크가 골로 연결한데 이어 헬무트란이 동점골을 추가해 2대2로 전반전을 마쳤다.

후반 서독은 막판 투혼을 발휘, 헬무트란이 역전골을 성공시켜 '결승전은 항상 역전극으로 끝난다'는 월드컵 축구의 징크스가 5회째 되살아나게 했다. 서독우승으로 패전 수렁에 빠진 국민들은 부흥의 의지를 다졌고 아데나워 수상은 스위스 국경까지 마중나가기도 했다. 오스트리아는 우루과이를 물리치고 3위를 차지했다. 득점왕은 헝가리 코시스(11골)에게 돌아갔다.

이주녕(축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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