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논술.심층면접-지식인과 윤리

대학[大學: 오늘날의 '대학(university)'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큰 공부', 또는 '참된 학문'을 의미함]의 도는 밝은 덕을 밝히는 데에 있으며, 백성을 가까이 하는 데에 있으며, 지극히 선한 데에 이르러 머무름에 있다. 머물 곳을 안 뒤에야 안정할 수 있게 되고, 안정된 뒤에야 고요할 수 있게 되고, 고요한 뒤에야 편안할 수 있게 되고, 편안한 뒤에야 생각할 수 있게 되고, 생각한 뒤에야 깨달아 터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건에는 근본과 끝이 있고, 일에는 끝과 시작이 있는 법이니, 먼저 해야 할 것과 나중에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안다면 곧 도(道)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고인이 천하에 밝은 덕을 밝히고자 할 때에는 먼저 그 나라를 다스렸고, 그 나라를 다스리려는 자는 먼저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하였고,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하려는 자는 먼저 그 몸을 닦았고, 몸을 닦으려는 자는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하였고, 마음을 바르게 하려는 자는 먼저 그 뜻을 정성되게 하였고, 그 뜻을 정성되게 하려는 자는 먼저 앎(知)을 지극하게 하였으니, 앎을 지극하게 하는 것은 사물을 접하여 그 이치를 연구하는 데에 있다. 사물을 연구한 뒤에야 앎에 이르게 되고, 앎에 이른 뒤에야 뜻이 정성스럽게 될 수 있고, 뜻이 정성스러워진 뒤에야 마음이 바르게 되고, 마음이 바르게 된 뒤에야 몸을 닦을 수 있으며, 몸을 닦은 뒤에야 마음이 바르게 되고, 마음이 바르게 된 뒤에야 몸을 닦을 수 있으며, 몸을 닦은 뒤에야 집안이 가지런해지고, 집안이 가지런해진 뒤에야 나라가 다스려지고, 나라가 다스려진 뒤에야 천하가 화평케 될 것이다.

-'대학(大學)'에서

아주 오랫동안 좌파 지식인들은 진실과 정의를 소유할 능력을 갖고 있으며, 그것을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지녔다고 인정받아 왔습니다. 말하자면, 좌파 지식인들은 보편적인 것의 대변자로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므로 지식인이 된다는 것은 우리 모두의 의식이자 양심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마르크시즘으로부터 이전된 생각이 깃들여 있음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마치 프롤레타리아가 그들이 처한 역사적 조건으로 인해 보편적인 진실의 담지자가 되는 것처럼, 지식인들도 그들의 도덕성이나 이론적이고 정치적인 선택으로 인해 분명하게 의식되고 표현된 형태로 이 보편적인 진실을 소유하는 존재가 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식인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에게 불분명하고 집단적인 형태로 구현된 보편적인 진실이 분명하게 그리고 개인을 통해 형상화된 것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그러나 지식인이 이러한 역할을 떠맡아야 한다는 생각이 사라진 지도 꽤 오래 되었습니다. '이론과 실천의 통합'에 새로운 양상이 정립되었던 것입니다. 지식인은 '보편적인 것', '전형적인 것', 또는 '만인에게 옳고 참된 것'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영역에서 그들의 삶과 노동의 조건이 만들어 내는 환경 ―주택 정책, 병원, 수용소, 실험실, 대학, 가족, 그리고 성적 관계 등―에서 일하는 데에 익숙해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새로운 상황은 지식인들에게 자신들이 수행해야 할 투쟁이 무엇인지를 더욱 가깝고도 친숙하게 알려 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더욱이 지식인들은 그들이 처한 특수한 환경 안에서 프롤레타리아나 대중이라는 고답적인 투쟁의 쟁점과는 전혀 다른, 말하자면 '보편적인 주제'가 아닌 새롭고도 특수한 문제에 부딪히게 된 것입니다. (중략) 나는 이와 같은 지식인을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지식인의 개념 ― 우리는 이러한 지식인들을 '보편적 지식인'이라 부를 수 있겠는데 ―에 대비하여 '전문적 지식인'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 미셀 푸코, '권력과 지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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