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일류가 아니면 살아 남지 못한다", "무한경쟁시대","초일류"등등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그래야만 경쟁에서 이길 수 있고 살아 남을 수 있다고들 한다. 우리 모두가 그러한 가치관에 세뇌되고 있는 것이다.
'보통'이나 '평범'은 곧 '실패'나 '탈락'을 의미한다. 낙오자에게는 아무도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라도 일단 성공만 하면 부와 명예를 차지할 수 있고, 학식과 인격도 저절로 높아지며 행복해진다고 믿는다. 교육도 본래의 모습을 잃고 오로지 출세의 수단이 되었다. 출세의 의미도 자아 실현이라는 본래의 의미보다 권력이나 부, 또는 명성의 쟁취로 변질되었다. 학과 선택도 적성이나 취미보다는 권력이나 재물이 보장되는 쪽으로 몰린다. 법 위에 힘이 있으며, 변칙이 상식이 되고, 물리적인 힘과 양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억압적인 사회로 달려간다.
그러다보니 우리 삶의 목표가 욕망을 채우고 남들보다 하나라도 더 많이 갖는 것이 돼버렸다. 넘치는 물건들, 음식, 집, 토지까지도 자기 욕심대로 맘껏 갖고 싶어한다. 우리들은 조급해지고 난폭해졌으며 남을 헐뜯고 시기하면서 서로 미워하는 분위기가 됐다. '나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이 사회에 만연해 있다.
누구라 할 것 없이 욕망을 끊임없이 확대하여 무제한적으로 충족시키려하다 보니 어떤 윤리적 판단이나 정신적 요구도 부수적인 것이 되어 버렸다. 눈앞의 이해관계에 매달려 멀리 볼 수가 없고 사소한 것들에 집착하여 아웅다웅거린다. 그러나 사람이 어떻게 끝없이 경쟁할 수 있으며 욕심만으로 살수 있는가? 물론 정당하게 해야할 경쟁도 있고 채워야 하는 욕망도 있지만 갈수록 궁핍해지는 우리의 내면을 돌아보며 채우려는 노력도 있어야 할 것이다.
무조건 1등을 요구하는 이 사회의 숨막히게 하는 가치관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 우리는 누구이며 왜 그렇게 부수적인 것들에 목숨을 걸고 있는지? 삶의 원리가 무엇인지, 그것이 허락하는 한 어떤 의미로 나를 채우고 싶다.
정형외과 전문의
댓글 많은 뉴스
[정진호의 매일내일(每日來日)] 3·1절에 돌아보는 극우 기독교 출현 연대기
이낙연 "조기 대선 시, 민주당은 이재명 아닌 다른 인물 후보로 내야"
김세환 "아들 잘 부탁"…선관위, 면접위원까지 교체했다
野, '줄탄핵'으로 이득보나…장동혁 "친야성향 변호사 일감 의심, 혈세 4.6억 사용"
尹공약 '금호강 르네상스' 국비 확보 빨간불…2029년 완공 차질 불가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