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에 대한 금융지원에 정부가 원칙도 체면도 없이 다급하게 나선 모습은 국민을 무척 불안하게한다. 현대전자의 미국현지법인이 최근 일부 은행들의 외면으로 부도위기에 몰리자 채권은행장·부행장 긴급회의가 열려 금융감독원의 고위관계자까지 참석해 일일이 자금지원 의사를 확인한 끝에 대규모 자금지원을 결의했다는데는 할 말을 잊는다.
정부·채권단이 여러차례 "마지막 지원"이라며 다섯번째나 이같은 현대특혜를 되풀이하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불과 며칠전 4대개혁 평가 자리에서 부실기업 상시퇴출 시스템을 만들겠다던 정부약속을 하루아침에 뒤엎은 것이 더 큰 문제다. 게다가 이번엔 공개적으로 금감원 고위관계자가 자금지원 의사를 체크까지 했다는 것은 노골적 관치금융이 되살아나고 있는 모습이다.
현대가 붕괴하면 국민경제에 엄청난 타격을 줄 것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경제위기이후 경제의 회생을 위해 국민의 피와 살인 공적자금을 엄청나게 투입해 사활을 걸고 추진하고 있는 구조조정의 방향이 현대지원의 무원칙 때문에 잘못된다면 국민경제의 앞날이 암담해진다. 이는 국민경제를 볼모로하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자금지원을 받게된 현대전자·현대건설·현대석유화학 등 현대3사는 아직 개별기업의 실태와 문제점, 기업전망에 대한 종합적 판단이 불확실한 상태인만큼 다른 기업들과의 형평성문제로 특혜시비가 증폭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투명성·수익성 등으로 기업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구조조정의 합의가 무너지고 관치금융의 줄서기로 기업부실이 금융부실로 전가되고 그것이 공적자금투입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되풀이될 것이다. 국제적으로는 금융기관과 국가의 신인도가 떨어지고 지난번 현대에 대한 산업은행 신속채권인수로 무역분쟁을 일으킨 사례처럼 국제거래에도 마찰요인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왜 현대만 이렇게 원칙없이 지원하는가. 정부가 뒤늦게나마 부실기업 상시퇴출 시스템을 작동시키겠다고 한 것은 도산기업의 피해보다 더 큰 국익을 위해서였다. 현대라고해서 여기서 예외일 수는 없다. 현대전자는 반도체가격이 회복되지 않으면 회생가능성을 장담할 수 없고 현대석유화학은 업계자율구조조정이 아직 지지부진한 상태에 있다. 현대건설은 5월초에 마무리되는 실사결과가 나와봐야 전망을 알 수 있을 만큼 모두 불투명한 상태에서 이같은 지원결정은 무모하다. 먼저 정확한 실사를 통해 살아날 수 있을지부터 판단한뒤 현대 지원을 결정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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