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孔子)가 제자들을 거느리고 태산 근처를 지나다가 어떤 부인이 한 무덤 앞에서 슬피 우는 것을 보았다. 공자는 예(禮)를 표하고 물었다.
"그대가 곡을 하는 것은 특별히 그럴만한 근심이 있어서일 것인데, 그 까닭이 무엇이오?"
부인은 대답한다.
"옛날에 시아버님이 범에 물려서 죽고, 그 뒤로 내 남편이 죽더니 이번에는 자식이 또한 범에 물려 죽었답니다".
"그런 참혹한 호환을 당하고도 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지 않소?"
"이곳에는 가혹한 정치가 없습니다".
그 말을 들은 공자는 제자들을 돌아다보면서 말했다.
"가혹한 정치가 범보다 사납다는 것을 너희들은 기억해 두어라!"
'예기(禮記)'의 단궁(檀弓) 하편에 나오는 우화이다.
이름난 병법가로 '오자병서'를 쓴 전국시대의 명장, 오기(吳起)는 벼슬을 구하러 이 나라 저 나라를 기웃거리다가 위(魏)나라 임금의 지우(知遇)를 받아서 드디어 그렇게도 소원하던 장수자리를 얻었다. 그때부터 그의 활약은 대단해서 나라를 위해서 많은 공훈을 세웠다.
그는 장군의 신분이면서도 병졸들과 함께 자고, 함께 먹었다. 그리고 잠을 잘 때도 자리를 깔지 않고 나다닐 때도 수레를 타지 않았으며 자신이 먹을 양식까지 손수 싸들고 다니면서 병졸과 동고동락했다. 한번은 한 병졸의 등에 등창이 나자 오기는 입으로 그 등창의 고름을 빨아주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들은 그 병졸의 어머니가 대성통곡을 하는 것이었다. 이웃여인들이 우는 까닭을 물었더니 병졸의 어머니는 울면서 말했다.
"몇 년 전 오기 장군이 내 남편의 등에서 고름을 빨아낸 적이 있었다오. 남편은 감격했지요. 그 뒤 남편은 싸움터에 나가서 장군의 은혜에 보답한다면서 용감하게 싸우다 죽었다오. 이번에 오기 장군이 내 자식의 등에서 고름을 빨아주었다고 하니, 그 애가 언제 어디에서 죽을지 모르겠소".
백성은 이렇다. 호랑이가 시아버지와 남편을 차례로 해친 나라에 살면서도 그 나라의 정치가 바르고 관대하면 그곳을 떠나지 않으며, 그가 아플 때 다스리는 사람이 자기 몸처럼 돌보고 사랑해 주면 돌과 화살이 우박처럼 쏟아지는 싸움터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기꺼이 목숨을 내놓는다.
요즘 조국을 버리고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거나 자식을 다른 나라로 보내어 교육시키고 그곳에서 뿌리를 내리도록 하려는 백성이 줄을 잇고 있다. 이민을 가기 위해서 수속중인 사람, 이민 길을 찾아보고 있는 사람, 거기까지는 아니지만 장차는 이 나라를 떠나야겠다고 생각하고, 또한 떠나고 싶어하는 백성이 얼마나 되려는 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우리의 둔감한 일부 정치가들조차 이에 대한 대책을 요구하고 나선 것을 본다면 그 심각성이 짐작될 것이다.
누가 무엇이 백성으로 하여금 조국을 등지게 만들었는가. 우리 정치가들이 그렇게 만들었다. 이 나라에는 관대한 정치도 없고, 이 나라에는 백성의 고름을 빨아주고 어루만져 주고 사랑해 주는 정치가도 없다.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다가 적군에게 사로잡혀 수 십 년을 지옥에서 살아간다 하더라도 이들을 데려오거나 이들의 백골을 걷어오겠다는 마음도 힘도 없을 이들을 위해서 누가 기꺼이 목숨 바칠 것인가.
사는 곳이 아무리 박토라 하더라도 그 땅에 희망의 씨앗이 자라고 믿음이 있는 한, 백성은 그 땅을 버리지 않는다. 사는 것이 아무리 괴롭고 어렵다 하더라도 다스리는 사람과 이웃이 함께 동고동락한다면 백성은 기꺼이 목숨을 내놓는다. 나라를 떠나고 떠나려는 사람이 늘어간다는 것은 이제 이 땅에서 희망과 믿음이 사라졌다는 증거이다.
다스리는 자들은 나날이 살찌고 겹치는 영광에 겨워서 호언장담을 일삼는데, 백성은 이들을 믿지 않고 자식을 이 땅에서 키울 수 없다고 조국을 등진다. 이것이 이 나라이다. 한양대 교수.작가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
계명대에서도 울려펴진 '탄핵 반대' 목소리…"국가 존립 위기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