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7시간30분간에 걸쳐 진행된 (주)대우 등 대우4개 계열사 전현직 경영진들에 대한 재판에서는 대우그룹 회계의 총체적 난맥상에 대한 증언이 쏟아져 나왔다.이들은 김우중 회장이 해외금융조직의 빚을 갚느라 국내 계열사의 돈을 마구 끌어들이는 가하면 직접 나서서 분식회계를 지휘하고 수출서류까지 복사까지 해가며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밑빠진 독 BFC=대우가 영국 런던에 설립한 비밀금융조직 BFC는 90년대 초반만 해도 계열사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세계경영'의 선봉장이었다.
그러나 이날 공판에서 이상훈 (주)대우 전 국제담당 전무는 검찰 신문을 통해 "96년을 전후해 BFC의 차입금 규모는 60억달러(7조2천억여원)까지 불었지만 세계경영을 위해 각지에 쏟은 투자금 회수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결국 국내 지원없이는 부도가 불가피한 지경에 이르렀다.
영국의 페이퍼컴퍼니(가공회사)에서 알루미늄을 수입하는 것처럼 위장해 돈을 보냈고 자동차 수출대금과 해외 현지법인을 통한 차입금도 고스란히 BFC로 흘러들어갔다.
대우 전현직 임원들은 "(주)대우의 자금사정도 나날이 나빠져 해외와 국내법인중 누가 먼저 부도날지 걱정하는 지경에 달했는데도 김 회장은 여전히 신규 해외투자를 지속했다"고 털어놨다.
이동원 전 BFC 법인장은 "IMF 직전 우크라이나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결정적인 패착이었다"고 통탄했다.
그러나 BFC의 실체는 끝까지 베일에 쌓여 있었다.
강병호 전 (주)대우 사장은 "99년 회사가 워크아웃에 들어가기 직전에야 실체를 알았다"고 실토했을 정도.
◇막무가내 분식회계=대우 분식회계는 임원들과 회계사들의 일부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 회장의 지시에 의해 막무가내로 진행됐다.
이성원 (주)대우 전 회계본부장은 "자동차 수출부문을 대우자동차에 넘긴 것은 특별이익으로 계상해야 하지만 김 회장이 영업이익이나 영업외이익으로 계상하라고 고집했다"며 "박모 회계사가 끝까지 반대하자 직접 불러 설득했다"고 진술했다.그는 "박 회계사는 '총수가 저러니 큰 일 났네'라고 한탄했다"고 밝혔다.
김 전 회장은 일부 반대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조단위에 달하는 적자마저 흑자로 둔갑시키라고 지시하고 이를 못맞추면 질책까지 한 사실이 속속 드러났다.
금융감독원의 특별감리가 시작되자 회계법인이 "입을 맞추자"고 제안했다는 대우자동차 임원의 진술이나 소액주주의 손해배상 충당금을 쌓겠다며 돈을 달라는 회계법인의 요구를 분식 약점때문에 물리칠 수 없었다는 대우통신 전 사장의 진술은 분식이 낳은 '검은 유착'을 새삼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대우만의 대출사기 '특수차입금'=대우가 금융권으로부터 돈을 끌어오기 위해 '특수차입금'이라는 명목의 독특한 수법을 써온 사실도 확인됐다.
특수차입금이란 허위 수출계약서를 만들어 거래은행으로부터 무역환어음을 할인받는 방법으로 차입하는 수법.
특히 이미 한번 사용한 선하증권을 복사해 다시 사용했다는 검찰의 추궁은 충격적이다.
무역환어음 할인시 일반 차입금보다 이자가 싸고 기존 은행 대출한도도 줄어들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지난 80년대부터 이런 수법이 이용돼 온 것으로 드러났다.
---비리몸통 '대우'공판 검찰 신문에만 3시간
13일 오후 서울지법 311호 법정에서 열린 대우 경영비리 사건 공판은 근래 보기드문 마라톤 재판이었다.
이날 공판은 (주)대우와 대우자동차, 대우중공업, 대우전자 등 형사합의21부(재판장 장해창 부장판사)에 배당된 4개 계열사 전현직 임원, 회계사 등 모두 33명의 피고인을 상대로 오후 3시에 시작해 오후 10시30분에 끝났다.
김우중 회장만 '참석'했으면 대우그룹 전체 임원회의로 봐도 될 정도로 대우의 경영진들이 모두 출정했다.
8명의 피고인이 법정에 선 대우자동차 관련 공판은 대우차 전현직 임원들이 대부분 혐의를 인정하고 회계사들만 일부 분식 사실에 대해 다퉜을 뿐인데도 신문사항이 많아 7시가 돼서야 끝났다.
이어 피고인 13명의 (주)대우 공판은 '대우 비리'의 몸통 답게 검찰신문만 3시간여 진행됐다.
대우자동차와 (주)대우 사장을 모두 역임한 강병호 피고인은 내내 법정을 떠나지 못하는 고역을 치러야 했다.
재판부는 공판이 길어지자 검찰측에 구속 피고인들에 대한 신문을 먼저 진행할 것을 요청, 이들부터 법정 밖으로 내보내는 보기드문 장면이 연출됐다.
이날 법정을 가득 메웠던 대우 계열사 전현직 임원과 직원들은 물론 변호인들도 견디기 힘든 듯 법정 안팎을 자주 들락거렸지만 일부 가족들은 시종 자리를 지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오후 10시께 시작된 대우중공업 관련자들에 대한 공판은 인정신문만 진행됐고 대우전자 피고인들에 대해서는 변호인 신문만 짧게 진행, 오후 10시30분께야 겨우 재판을 마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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