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는 '유형의 땅'이다.실권한 황제, 혁명가, 죄인 들이 상트 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에서 추방당해 동토의 땅으로 유배되었다. 이르쿠츠크는 그 '유형의 땅'의 중심에 서 있다. 데카브리스트의 난'은 참혹한 유형의 정점이다.
러시아인이라면 누구라도 데카브리스트의 난을 설명할 수 있다. '데카브리'는 러시아어로 12월, '데카브리스트'는 12월 당원을 뜻한다.
1825년 12월 일단의 귀족 청년장교들이 니콜라이 1세의 즉위식에 맞추어 당시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 원로원 광장에서 거사를 일으켰다. 나폴레옹 전쟁에 출진해 유럽에 만연한 자유의 공기(공화주의)를 쐬었고, 농민 출신 병사들로부터 농촌의 비참한 실정을 전해 들은 그들은 농노제 폐지와 차르(러시아의 황제) 의 전제체제를 타도하기 위해 일어섰다. 거사는 그러나 이내 진압되었다. 주모자 5명은 처형당하고 120여명은 이르쿠츠크로 유배되었다. 그들은 다만 자신들의 두 발로 6천㎞가 넘는 길을 걸었다.
유배지에서는 20㎏이 넘는 족쇄를 차고 중노동을 해야 했다. 그들이 떠나자 약혼자들과 젊은 아내들 일부가 연인을 찾아 같은 길을 걸었다. 상당수는 눈보라 속에서 객사했다. 몇 명의 여인은 기어이 연인을 만났고, 허드렛일로 연명하며 사면이 될 때까지 함께 살았다. 그 중 토르베츠코이(1790~1860)의 아내 에카테리나 토르베츠카야는 혹한의 광산 갱으로 남편을 찾아가 족쇄를 찬 발에 입을 맞추었다고 전한다.
30년이 흐르고 마침내 사면을 받았으나 아내는 이미 죽은 뒤였다. 남편은 수도로 돌아가지 않고 이르쿠츠크에 남아 문화를 고양하다 죽었다. 러시아의 국민 시인 푸쉬킨은 데카브리스트들을 향해 헌시를 지어바쳤다.
"시베리아 깊은 광맥 속에/그대들의 드높은 자존심의 인내를 보존하소서/그대들의 비통한 노력과 정신의 고상한 지향은/사라지지 않으리니//불행의 신실한 누이, /희망은 암흑의 지하 속에서/용기와 기쁨을 일깨우리니/그날은 오리니//사랑과 우정이 그대들에게 닿으리니/깜깜하게 닫힌 곳 빗장을 열고/지금 그대들의 감방 그 굴 속으로/나의 자유의 소리가 다다르듯이"
데카브리스트들이 살던 집이 '데카브리스트 기념관'이란 이름으로 남아 있다. 자그마한 목조 건물이다. 입던 옷, 안경, 책상, 필기구 그리고 족쇄와 삽 같은 것들이 보인다. 눈이 많이 내린 추운 겨울날 한 데카브리스트는 외투를 걸치고 호롱불 아래서 의자에 앉아 그리운 사람에게 편지를 썼던 모양이다.
이광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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