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잘 산다'는 것에 대한 생각

아침 산에 갔다. 새파란 하늘에 산등성이로만 흰 구름이 부드럽게 걸려있었다. 햇살은 따사롭고 응달의 얼어붙은 봄눈은 도사리는 일에도 지친 듯 몸을 풀어 흙으로 스며들었다. 물이 오른 나무 가지엔 푸른 기운이 감돌고 때를 놓칠세라 짝짓기에 바쁜 새들은 거의 황홀하게 노래했다. 까마귀와 까치가 비상을 겨루고, 대지는 꽃샘바람을 불러 겨우내 덮었던 낙엽을 들춰냈다. 이런 자연의 변화에서 나고 자라는 생물의 하나인 내가 오늘 아침 북한산 국립공원의 한 산자락 바위에 앉아서 '잘 산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했다. 요즘 우리를 신경쓰게 하는 문제들은 여러 가지다. 부시 행정부가 남북문제에 미칠 '변수'. 경제 위기와 부정부패로 인한 국민의 정부불신 등. 그러나 지금 우리를 근원적으로 신경쓰게 하는 것은 전세계적인 광우병 파동이다. 물론 우리 나라도 예외일 수 없다.

내가 어릴 때, 우리 집에도 소를 길렀다. 소는 잡아먹기보다 농사일을 시키는 게 더 큰 목적이었다. 그래서 황소는 새끼를 낳는 암소와 달리 힘이 세어야 최고로 쳤다. 할아버지는 남자도 황소 고르듯 해야 한다고 말하셨다. 어느 집이든 남보다 힘이 센 황소를 부리면 아주 자랑거리였다. 여름이면 소먹이로 꼴을 베어 나르는 게 큰 일이었다. 겨울에는 소가 먹을 볏짚을 쌓아두는 고질가리가 따로 있었고 그 앞에 작두를 두고 두 사람이 볏짚을 썰었다. 손가락 만한 크기로 썬 볏짚을 가마솥에 넣어 푹 끊이는 것이 소가 먹는 여물인데 더러 콩을 섞어서도 끓였다. 여물 끓는 냄새는 아주 구수했다. 여물은 풀이 날 때까지 끓여주는데 특히 이맘때면 여물 푸고 남은 물에 내 손을 담궈 때를 불렸다가 밀었다. 아직 응달에 눈이 남아 있는 이즈음 볕에 앉아 하루종일 흙을 만지고 놀면 손등이 갈라져서 피가 나고 그것이 굳어 딱지가 앉았다. 그 꼴이 아주 두꺼비 등판 같았다. 그렇게 튼 손등에 물이라도 닿으면 쓰라려서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이지경이 되면 할아버지가 도망가는 나를 붙잡아 여물 물에 손을 집어넣었다. 아파도 참고 때를 밀면 보드라운 살이 나왔고 할아버지는 그 살 위에 산돼지 기름을 듬뿍 발라주셨다. 이튿날이면 손이 다 아물어서 다시 때가 탈 때까지 쓰라린 걸 모르고 지냈다. 이렇게 소와 한 집에서 살던 시절 나는 쇠고기를 어쩌다 국으로만 먹어 보았었다.

집에서는 돼지도 길렀다. 돼지가 먹는 것은 돼지죽이라고 했다. 돼지죽은 집에서 나온 구정물과 음식 찌꺼기에 장거리 엄마 친구네에서 받아놓은 구정물을 모아다가 만들었다. 사람 입에 돼지고기가 맞고, 개고기를 좋아하게 되는 것은 돼지와 개가 먹는 것이 사람과 같기 때문이라고 한다.

광우병은 바로 그 먹는 것이 잘못되어서 생긴 문제다. 초식동물인 소에게 동물성 단백질 사료를 먹인 것이다. 하기야 풀을 먹이자면 그 품이 보통이 아닐 뿐더러 풀밭은 고속도로와 공원과 러브호텔과 골프장으로 많이 사라졌다. 갈비집, 등심집, 해서 사람들은 너무도 고기를 즐긴다. 예전엔 귀한 손님이 오면 고기를 대접해야 마음이 흡족했는데 요즘은 고기대접이 가장 성의 없고 쉬운 대접이 되고 말았다.

이쯤에서 광우병과 구제역을 통해 우리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성찰해야 할 것이다.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사람은 어떻게 먹고살아야 하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너무 잘 먹어 생기는 병들이 대부분 성인병이라고 한다니, '너무 잘 먹고 너무 잘 사는' 것의 의미를 깊이 들여다 봐야겠다. 탐욕과 오만은 결국 자신을 해치는 가장 빠르고 쉬운 길이라는 것. 사람은 자연 만물과 조화롭게 살지 않으면 죽게 된다는 것. 이런 것에 대한 깊은 반성과 성찰의 기회로 삼아야할 것이다. 때를 놓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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