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자노트-박찬석과 이인제

박찬석 경북대 총장이 민주당 이인제 최고위원의 후원회장직을 맡기로 했다가 학교 내부는 물론 지역사회의 들끓는 비판 여론에 못이겨 중도하차한데 대해 말이 많다.

박 총장은 당초 각계의 비난이 쏟아지자 "이 최고위원이 비교적 비전과 대안을 갖춘 젊은 정치인이라고 판단했다"며 "개인적으로 좋아서 맡은 일"이라고 항변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며칠 버티지도 못하고 여론 앞에 무릎을 꿇어버렸다.

현상만 놓고 볼때 박 총장은 이 최고위원에 대한 비토세력이 강한 지역의 대학총장으로서, 또 대권도전을 선언한 정치인의 후원회장을 맡기에는 정치적 감각이 너무 부족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역사회를 대표하는 대학의 총장을 향해 쏟아졌던 정제되지 않은 비판 여론 역시 곱씹어 볼 여지를 남겼다.

이 최고위원이 지역 출신이었다면, 또 지역에서 인기가 있었다면 마녀사냥식의 비판이 지금처럼 이어졌을까. 아마 그렇지 않았을 것 같다. 때문에 박 총장의 이 최고위원 후원회장직 사퇴는 지역의 정치적 미성숙을 입증한 사례같이 보여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지금까지 이수성 전 서울대총장이 한나라당 손학규 의원, 송자 전 연세대총장이 민주당 김영환 의원의 후원회장직을 총장재임 시절 맡았으나 박 총장 만큼 여론으로부터 난도질 당하지는 않았다.

또한 "후원회장을 맡는 것이 총장의 위상을 실추시키고 대학발전을 저해한다"는 경북대 교수회의 지적과 달리 이수성씨나 송자씨가 총장으로서 정치인의 후원회장을 맡고 있을 때 그들의 위상이 실추됐다는 이야기도 없었고 서울대와 연세대의 발전에 지장을 초래했다는 비판도 없었다.

대구와 서울이 달라서일까? 서울에서는 대학총장이 정치인의 총장을 맡아도 되고 대구에서는 안된다는 말일까?

이런 의문이 꼬리를 물면 자연히 박 총장의 이 최고위원 후원회장 중도사퇴는 '반 이인제'라는 지역 여론의 희생물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이 최고위원 진영이 "이제 대구.경북을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낙담했다는 소식에 웃음을 짓는 쪽에서도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이동관기자 llddk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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