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밀착취재-비슬산 파괴 현장을 가다

▨ 훼손 실태청도에서 바라보는 비슬산은 대구쪽에서 보는 것과는 또다른 멋을 풍긴다. 청도군 각북면의 비슬산 자락은 아늑하고 품위가 높은 한폭의 산수화 그대로다. 한마디로 진산이다. 이처럼 수려한 비슬산이 무참히 훼손당하고 있다. 여러차례 언론이 훼손의 심각성을 지적했지만 자연훼손 행위는 좀처럼 멈추지 않고 있다. 지역경제 활성화란 명분을 내세운 지자체의 무분별한 개발논리에 밀려 자연환경 보존은 뒷전인 것이다.

청도쪽 비슬산 자락은 각북면 남산리 일대와 용천사 부근 오산리 일대의 계곡을 중심으로 무분별하게 파헤쳐지고 있다. IMF 이후 한때 주춤했으나 지난해부터 가속화하고 있다. 각북면의 농지전용 건수는 96년 38건, 97년 55건으로 절정을 이루었으며 IMF시기인 98년 23건, 99년 16건으로 현저히 줄어 들었다가 지난해 30건으로 다시 급증하고 있다.

각북면 오산리 일대 산림형질변경 허가는 99년 4건, 지난해 5건이었으며 남산리와 합하면 두배나 늘었다.

비슬산 남동쪽 계곡인 남산리 마을의 산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규모가 큰 ㅁ 레스토랑이 영업중이다. 레스토랑 옆에 설치한 사방댐에는 맑은 물이 흘러 들고 있다. 사방댐 설치는 폭우시 유속을 조절하고 돌과 토사등이 밀려 내려오는 것을 막기위한 목적으로 96년 경북도 산림환경연구소에서 시행한 사업이다. 여름철이면 사방댐 주변에 인파가 몰려 들고 인근 식당에서는 사방댐 주위에서 불법영업을 한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평상과 의자들이 한켠에 쌓여있고 사방댐 위쪽엔 대형천막 자리와 가스통이 방치돼 있다. 인근 주민들은 사방댐 설치와 인근 식당이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계곡을 따라 400여m 지점은 도로개설을 하면서 계곡을 반쯤 메워 놓았다. 폭우가 쏟아지면 토사가 밀려 내려와 산사태가 날 우려도 있다. 계곡엔 며칠전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너구리 한마리가 발견됐다.

용천사 부근의 계곡도 급속도로 파괴되고 있다. 이미 군청으로부터 허가를 받아 여관과 카페가 들어서 있고 계속해서 공사가 진행중이다. 여관뒤 산길은 마구 파헤쳐져 있고 산속 깊숙한 곳에서는 누군가가 밭을 형질변경해 부지를 조성하고 있는 중이다. 대형 컨테이너까지 설치해두고 본격적인 공사를 벌이고 있다. 이처럼 청도지역의 비슬산 계곡은 성한 곳이 없다.

달성군 유가·옥포면 일대를 비슬산 군립공원으로 지정, 특별관리하고 있는 달성군 역시 임도개설을 구실로 수려한 산림을 훼손하고 있기는 청도군과 별반 다를 바 없다. 그나마 지난 98년부터 도시계획법을 적용, 공원·보존녹지 지구로 묶는 바람에 옥포와 유가면은 난개발이 주춤한 반면 가창면 일부지역은 여전히 위법행위가 저질러지고 있다.

옥포면 옥연지를 지나 반송3거리에서 김흥마을쪽으로 올라가면 유가면 비슬산으로 넘어가는 옥포 김흥2리~유가 양리 구간의 임도개설 공사현장을 만난다. 폭 3m, 길이 3.5km 규모인 임도공사가 3년째 이어지면서 수십년짜리 소나무 수백그루가 잘려 어지럽게 널려 있고, 산 허리 곳곳이 싹독 잘려나간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임도 150m 지점의 인근 농장에는 취사기구를 갖춘 컨테이너 박스와 천막 등 불법시설물이 설치돼 있으며, 1천여평의 농지는 부지 정지작업이 끝난 상태다. 이곳에서 만난 산불감시원은 "땅 주인은 대구에 살며 가끔씩 들러 농장을 관리하고 있다"고 전했다. 임도가 난개발을 끌어들이는 꼴이다.

임도를 따라 계속 올라가면 산 바위를 잘라 만든 10여곳의 급커브 임도와 접한다. 꼬불꼬불한 급경사인데다 수직 절단한 산 비탈면에 대한 대책을 세우지 않아 비가 오면 토사가 마구 흘러내려 인근 계곡의 황폐화가 우려되는 곳이다.

산을 마구 절개하고 공사후 마무리도 제대로 하지않아 벌써부터 이곳 계곡은 지반침하와 토사유출이 심각한 상태. 이 때문에 달성군은 8부 능선과 정상지점 두 곳에 각각 200여m의 임도를 포장하는 등 긴급대책을 세우고 있으나 환경단체 관계자는 "임도를 다지고 도로포장을 해야 하는데 달성군이 지반침하와 토사유출을 막기위해 서둘러 눈가림식 조치를 하고있다. 결국 이곳 임도로 인해 지금까지 보존이 비교적 잘 돼 울창한 산림과 계곡을 자랑하던 유가면 양리쪽의 파괴도 가속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인

청도군은 98년 도내에서 가장 먼저 준 농림지역내 숙박, 음식점 설치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다. 지역경기 활성화가 명분이었다. 준농림지 완화정책은 당시 법에서는 금지하고 있었으나 환경문제 유발지역 제외를 전제로 시.군 조례로 가능토록 했던 것.

행정관청의 이같은 완화정책은 청도지역에 투자하고자 하는 도시인들의 목적과 맞아 떨어져 이때부터 빗나간 관광사업이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청도군은 대구 인근에 남은 유일한 청정지역이다. 도시인들은 환경이 수려한 각북면 일대의 산과 농지를 사들여 식당과 여관, 레스토랑을 짓고 휴식을 원하는 도시인들을 불러들여 영업을 하고 있다. 합법적 허가 남발의 후유증을 심각하게 고민한 흔적은 찾아 보기 어렵다.

임도개설도 무분별한 개발의 원인. 임도개설의 가장 큰 목적은 임산물 반출, 육림, 산불진화, 인근 지역과의 연결 등이다. 청도군 관계자는 임도를 이용한 상업행위는 '절대 불가'라고 강조하지만 산속에 들어서는 건물들은 모두가 임도나 옛산길 도로를 확장하여 우후죽순처럼 번지고 있다. 일부건물은 당초 축사나 농사형 창고로 허가받은 후 식당으로 바꾸고 있다는 의혹도 있다.

당국이 불법행위를 단속하고도 후속 조치를 미흡하게 하고 있는 것도 비슬산 파괴의 한 원인이다. 개발제한구역이자 상수도보호구역인 달성군 가창면 정대2리 초곡마을 뒷산과 계곡은 ㅎ나무농장 주인 조모(48)씨와 구모(61)씨가 농지를 무단훼손하고 불법으로 임도를 개설했는 데도 달성군은 이들을 고발만 하고 원상복구는 뒷전이다.

ㅎ농장은 중장비로 계곡 1km를 밀고, 파낸 바윗돌로 축대를 쌓고 돌탑과 돌계단을 만드는 등 위법행위를 저질렀으나 달성군이 지난해 10월 이를 적발한 후 계곡 사이에 설치했던 철제 H빔과 복공판 등을 철거했을 뿐 수백개의 바윗돌은 그대로 두었다. 파해쳐진 계곡 주변은 흙과 바윗돌로 볼썽사납게 변했으며, 대형 마루와 냉장고, 의자 등도 여전히 남아 있다.

ㅎ농장을 따라 산 중턱으로 올라가면 소나무를 잘라내고 계곡의 물길을 돌려 만든 평탄한 부지(1천여평)를 볼 수 있다. 소유주인 구모씨가 산을 깎아 개설한 400여m의 불법임도는 원상복구는 커녕 버젓이 '도로' 구실을 하고 있다. 정지작업한 부지 주변은 철조망으로 겹겹이 둘러 싸였으며, 철제대문(2개)까지 설치돼 있다.

그런데도 당국은 더 이상 파괴 이전의 상태로 돌려놓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

▨ 문제점

청도군은 비슬산의 훼손따위는 아랑곳 없다는 태도다.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가능하면 누구든지 들어와서 개발하여 관광객도 유치하고 땅값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연환경 보존도 중요하지만 우선 배가 불러야 한다는 논리다. 군 수익사업 우선주의가 팽배하고 잇는 것이다.

행정당국의 이같은 '문호개방'방침 속에 몇해 전부터 청도군 전역을 대상으로 대구 등 대도시 주민들이 몰려와 '부동산 투자붐'을 일으켜 특히 각북면 일대 비슬산 자락은 몇년만에 모두 외지인 소유로 바뀌었다. 절경의 계곡마다 러브호텔과 찻집들이 자리잡으면서 계곡 하류지역의 음용수 수질보호문제도 대두하고 있다. 청도지역 주민들의 반응도 행정관청의 문호개방 방침과 마찬가지. 외지인들이 들어와서 투기붐을 일으켜 주기를 바란다. 역시 경제우선주의다.

특히 비슬산 개발문제를 두고 청도군과 달성군의 입장은 상반되어 있다. 청도주민들은 비슬산 훼손은 달성군쪽이 심각할 뿐 청도군쪽은 훼손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비슬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는 문제도 양지역의 입장이 다르다. 지난해 달성군이 비슬산 국립공원 지정을 위해 청도군을 방문, 협조를 요청했을 때 청도군은 거절했다. 달성군은 비슬산을 이용한 개발로 이미 챙길 것을 다 챙겨놓고 이제와서 국립공원으로 지정받는데 협조해달라고 하는 것은 청도지역만 손해보라는 것이라는게 청도군의 시각이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비슬산은 이미 상당한 훼손으로 망가졌다. 따라서 대구의 허파이며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비슬산에 대한 더 이상의 개발은 막아야 한다. 국립공원 지정을 서두르든지 청도쪽 비슬산 개발에 규제장치 마련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임도 개설이 난개발을 불러일으키는 한 원인이라는 것을 확인된 이상 지자체들은 이에 대해 신중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매일신문 취재팀과 동행한 영남자연생태보존회 회원들은 자치단체장들이 시군 수익올리기와 주민들의 무분별한 개발욕구가 난개발의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 자연보전에 대한 주민들과 공무원들의 의식변화와 함께 환경보존과 관련한 조례제정이 동시에 따라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경단체와 시민들의 꾸준한 산림훼손 감시활동도 필수적이다.

영남자연생태보존회 정제영 총무는 "일단 위법을 저질러놓고 적발되면 벌금으로 때운다는 배짱식 개발행위로 자연환경이 파괴되고 있다. 형식적인 단속 조치대신 실제로 원상복구가 이뤄지도록 해야 위법행위가 그나마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홍섭기자 hslee@imaeil.com

김교성 기자 kgs@imaeil.com

강병서기자 kbs@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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