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0)'리더 독선'.'시민 방관' 자세 고쳐야

성주, 칠곡, 영천, 울진…. 최근 시장 또는 군수가 뇌물을 받아 법정에 선 경북도내 자치단체들이다. 이중 감옥에서 징역형을 살고 있는 경우도 있고 혐의단계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경우도 있다. 지방의원들은 각종 이권에 개입하거나 의장 선거를 싸고 뇌물을 주고 받아 사법처리를 당한 사례가 줄을 잇고 있고, 관광성 외유로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사례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른바 지방화 시대가 열리며 이목을 끌었던 자치단체와 지방의회가 주민들의 관심권에서 차츰 멀어지고 있는 한 원인이다. 기본적으로 지방을 불신하려드는 중앙은 이같은 지방 리더들의 도덕적 해이를 빌미로 부단체장 국가직 전환 등으로 지방을 옥죄이려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지방분권이란 세계적 조류에 역행하는 반분권(反分權) 시도라는 비난도 아랑곳않는 중앙권한 강화다.

보기에 따라 지방은 부뚜막에 올려놓은 아이처럼 불안한 존재일지 모른다. 중앙집권, 수도권 집중의 인습(因習)으로 지방이 홀로설 기회가 없었던 탓이다. 사실 현재 지방의 역량으로는 분권이 이뤄져도 이를 감당할 수 없거나 일부 지방유지의 권한 확대에 그칠 공산도 적잖다.

건강한 지역사회 건설을 위한 지방혁신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주민을 만족시키는 지자체의 지역경영, 정치 행정이 주민과 가까워져 주민이 참여하는 정치, 활력 넘치는 기업, 건강한 시민단체, 줄어드는 범죄, 살기좋고 삶의 질이 높은 지역사회가 혁신의 목적이다.

더 이상 배우지 않으려는 자만심, 권위주의에 빠진 리더, 방관적 시민의식, 선도적 창조력 결여, 지방에 대한 비하의식, 개성의 부재 등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혁신의 대상이다.

문희갑 대구시장은 최근 대구의 분권운동팀과 오찬을 한 자리에서 중앙 관료의 말을 빌어 대구가 가장 먼저 바꿔야 할 것은 '시민들의 불신과 부정적 사고'라고 지적했다. 광주 부산 대전은 지역 특화산업 육성을 두고 장미빛 희망에 젖어 있는데 반해 대구는 밀라노프로젝트에 대해 너무도 부정적이라는 것.

지역의 정치.경제가 추락하면서 대구.경북 스스로에 대한 근거없는 불신이 커져 지역이 활력을 찾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보수성이 강한 곳, 외지 사람이 가장 적응하기 힘든 곳, 진정 고발이 가장 많은 곳, 타협의 문화가 없는 곳…"

과연 그러할까. 이를 부정할 수 있는 한가지 사례. 대구지법 강민구 부장판사가 솜씨좋게 보이고 있는 재판전 조정 성공 사례들이 그 것이다. 강 판사는 대구.경북 사람은 '도' 아니면 '모'여서 민사재판에서 소송당사자 양측의 타협을 이끌어내는 조정이 힘들다는 세간의 주장을 1년여만에 보기좋게 뒤엎었다. 전국 최고의 조정 실적을 거둔 강 판사는 "대구 사람이 비타협적이란 것은 선입견일뿐 사실은 성정이 순후해 타협적"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대구경북개발연구원 이정인 수석연구원은 같은 맥락에서 "지역혁신은 우리 고장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서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의 문화와 자원, 의식, 제도를 찬찬히 뜯어보면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보물도 많다는 것.

지역혁신의 대상은 너무도 많고 다양하다. 또한 개념 정립도 제대로 돼 있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지역혁신이 모호하고 추상적인 것으로 비치기도 한다.

경북대 경영학부 서정해 교수는 "지역혁신이 거창하지도 먼곳에 있지도 않다"고 말했다. "지방정부, 지방의회, 실업가, 교육계, 법조계, 시민단체 할 것없이 모두 혁신의 주체다.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기업 제도 조직을 바꾸는 것이 혁신이다. 각 분야가 혁신의 바람을 타면 지역은 그 총화로 자연스레 혁신으로 나가는 겁니다"

혁신에도 리더는 있다. 이른바 이노베이터. 그러나 지역혁신이 한 사람 또는 한 분야의 힘만으로 불가능하다.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각 이노베이터간의 네트워크 형성을 강조한다. 각계가 새로워지려는 노력을 하고 그 주체들이 활발한 토론과 정보교류로 분권의식, 혁신의식을 고양하면 지역에 혁신 에너지가 넘치게 된다는 것.

혁신에 나서기 전 주민들의 혁신에 대한 동의를 구하는 것이 또한 중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이노베이터가 독불장군식으로 끌고 가는 혁신은 실패하기 마련이며 이노베이터와 주민들의 의사 소통으로 컨센서스가 형성되어야 혁신이 결실을 맺을 수 있다는 얘기다.

농협 대구지역본부 최문섭 홍보팀장은 "시장과 길거리에서 장사하는 사람까지 분권과 혁신을 얘기할 때 지역혁신이 이뤄지며 중앙정부도 지방분권 물결을 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분권과 지역혁신은 지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지역과 나라의 경쟁력을 높이는 두 수레바퀴. 어느 것이 먼저냐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다.

대구의 지방분권운동 팀들은 지방분권이 지역혁신의 전제조건이라고 정리하고 있다. 지방이 분권을 수용할 능력이 없다며 이를 미룰 게 아니라 지역이 확고한 자치능력을 갖추도록 중앙정부가 도와야 하며 지방분권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지방은 지역 혁신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것. 이미 부산에서는 지역혁신을 자치역량 강화로 이해하며 활발한 주민자치운동을 벌이고 있다.

분권과 혁신은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하루 아침에 이뤄질 것으로 기대해서도 곤란하다. 지자체, 대학, 시민단체, 상공인, 문화계 등 주체들이 분권과 혁신을 자신 또는 단체와 지역을 살리는 유일한 길로 보고 머리와 가슴을 맞댈 때 분권과 혁신은 주민 곁에 성큼 다가설 수 있다.

분권과 혁신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대구사회연구소 김형기 소장은 "분권과 혁신운동이 일부 이노베이터들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된다"면서 "분권과 혁신이 지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임을 주민 스스로 인식해 운동에 동참하는 것이 운동 성패의 요체"라 지적했다.

최재왕기자 jwcho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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