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신복의 기준 18억원

오래전 우리나라에도 상연된 바 있는 '로마의 휴일'에서 '앤'공주 역(役)을 맡은 오드리햅번의 청순한 모습은 당시 장안의 화젯거리였다. 질식할것 같은 부(富)와 고귀한 신분의 무게를 잠시 벗어던지고 시민들과 어울려 웃고 떠드는 평범한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는 공주의 티 없는 미소는 올드팬들에게는 추억의 명장면으로 지금까지 남아있을것만 같다. 사람들은 정말 공주가 그랬던 것처럼 영화 아닌 현실에서도 큰 재산과 높은 신분에 부담을 느끼는 것일까.

◈그 답은 당연히 '예스'다. 영국의 한 대학 연구팀이 1990년부터 99년까지 해마다 1만명씩 10년동안 10만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덮어 놓고 돈이 많다고 행복한것이 아니라, "100만 파운드를 가질 때 가장 행복감을 느낀다"고 답변했다 한다. 답변을 한 10만명 가운데 1천117명이 복권 당첨과 유산 상속등으로 갑자기 벼락부자가 됐지만 모두가 행복감을 느끼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 보다는 거액의 재산 관리에 따른 심리적 부담과 주변의 눈길 때문에 부담을 느끼고 피곤했으며 "100만 파운드가 생겼을때가 부담 없이 가장 즐거웠다"고 고백하고 있으니 돈이 많다고만 해서 좋은 일이 아닌것만 같다. 답변자들은 행복한 인간의 조건으로 100만 파운드쯤의 재산과 함께 자기 일에서 성취감을 얻고 만족한 결혼생활에 병치레 없이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을 꼽았다.

◈영국인들이 내세운 행복의 조건도 우리들 같은 소시민들이 원하는것과 어찌 그리 비슷한 지 슬며시 웃음이 난다. 부부 금실좋고 직장에서 일잘한다 대접받고 자식 잘 자라고 건강걱정없고…. 사람 사는데는 동서(東西)가 다르지 않구나 싶으면서도 너무 많은 재산은 오히려 부담스러울뿐 굳이 100만 파운드(18억원)만 있으면 된다고 답변한 영국인들의 세상살아가는 지혜에 새삼 감탄하게 된다. 천석꾼은 천가지 걱정. 만석꾼은 만가지 걱정이라 했거니와 영국인들은 이미 생활에서 이를 터득했다고나 할까. 한푼이라도 더 챙기려고 안면몰수하는 배금주의자들이 한번쯤 짚어 볼 대목이다.

김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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