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바짝 마른 날씨에 초속 17m의 강풍까지 겹쳤다. 불길이 뻗어가기엔 더없이 좋은 조건.
20일 오후 1시30분쯤 포항시 북구 흥해읍 금장2리 개사육장 아궁이에서 발생한 산불은 순식간에 세력을 넓혀갔다. 해가 지고 진화작업마저 중단되자 산 이곳 저곳에서 시뻘건 불길들이 봉화불처럼 치솟았다.
능선을 뛰어넘은 불길은 몇km를 달려 포항~영덕간 7번국도로 밀려왔다. 밤 9시30분쯤 산불이 흥안리 10여가구 마을 쪽으로 향하자 소방관과 주민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불길이 산 정상을 넘어 차츰 다가오자 주민들은 하나 둘 마을 앞 도로로 피해 나왔다. 짐도 챙기지 못한 채 아기만 들쳐 업은 아주머니도 눈에 띄었다.같은 시간, 칠포에서 오도1리간 해안도로변 야산에서도 불길이 요동쳤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매케한 연기 속에 노폭 10m가 채 안되는 도로를 앞에 두고 소방관들은 최후의 방어선을 구축했다. 드라이브 코스로 빼어난 칠포~오도간 해안도로 경관이 망가지는 순간이었다.
◇영천=이날 오후 4시쯤 영천시 임고면 고천리 야산에서도 임야 수십ha가 탔다. 강한 바람 때문에 헬기마저 철수한 가운데, 불길은 먹이 찾는 야수처럼 인접 고경면 도암.해선.동도.상리.학리 등으로 계속 번졌다.
오전에 고경면 칠전리 사유림에서 잣나무와 느티나무 1만5천여그루를 심었던 영천시청 직원들은 삽을 놓고 산불 현장으로 내달려야 했다. 모두들 허탈해 했다.
◇영양=오후 5시10분쯤 영양군 석보면 화매리. 화매저수지 인근에서 시작된 산불은 강풍과 함께 화매 뒷산과 명동산 일대로 번지면서 삼의계곡을 따라 형성된 포산리 복골마을과 본동, 하삼의리, 속칭 곰취마을, 중삼의리 등 자연 마을들을 순식간에 에워쌌다. 석보면 삼의리 블루밸리 쉼터도 앞뒤로 조여오는 화염에 포위됐다.
대형 소방차와 진화 인력들이 건물 벽체와 지붕에 물을 끼얹고 낙엽을 제거하며 저지선을 마련했지만 주민들의 공포는 가시지 않았다. 쉼터 주인 남실관(56)씨는"마을 주민들과 공동체를 만들어 올해부터 고로쇠 채취에 나섰는데 화마가 삼켜버려 앞으로 몇년간은 포기해야 할 판"이라고 발을 굴렀다.
수십년간 독림가로 일해 온 김일수(61.영양읍 서부리)씨는 "밤새 울창한 산림이 잿더미로 변했는데 손도 써보지 못했다"면서"앞으로의 복구를 생각하니 기가 막힌다"고 말했다.
삼의계곡은 수십년생 소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형성하고 있는 영양군의 휴양 명소. 그러나 강한 바람과 함께 송진에 불이 붙으면서 그 좋던 모습은 사라져 버렸다. 밤을 뜬 눈으로 지샌 주민과 공무원들이 21일 새벽 5시부터 진화에 나섰지만 가파르고 험준한 지형은 접근을 거부했다. 불길은 영덕군 지품면 방향으로 계속 번지다가 8대의 헬기가 동원돼서야 고개를 숙였다.
포항.정상호기자 falcon@imaeil.com
영양.엄재진기자 2000jin@imaeil.com
영천.서종일기자 jise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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