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연 황사가 하늘과 땅, 사람과 거리를 뒤덮고 있다. 봄 햇살이 두터운 불투명함의 무게에 짓눌려 숨 죽이고 있지만 생동하는 봄 기운은 어김없이 거친 황사를 걷어낸다. 이 봄에 접하는 향토 문인들의 작품집들. 겨우내 정성들여 준비한 이들 작품집에는 자잘한 활자가 빼곡하고, 봄이 그득하다.
경주의 중진 시인 정민호씨가 열두번째 시집 '세월 앞에서'를 내놓았고, 대구의 시인 강해림씨와 권영호씨가 첫 시집 '구름사원(寺院)' '바람은 속도계가 없다'를 나란히 선보였다. 또 아동문학가이자 수필가인 이정혜씨가 이 봄에 썩 잘 어울리는 표제를 단 수필집 '햇살이 쌓이는 뜰'을 출간했다.
정민호씨의 이번 시집은 30년 넘는 교직생활을 마감하고 이제 여유를 갖고 글쓰기에 전념하겠다는 시인의 다짐이 담긴 시집이다. 근래 3년동안 쓴 시들을 함께 엮으면서 시인은 '세월'을 화두로 떠올렸다. 일상 속에서 느낀 감각적 이미지를 포착하거나 봄이 오는 길목에 서서 지나온 세월을 되돌아보는 시들이 담겨 있다. 국내외 문학기행에서 얻은 소재들을 형상화한 시들, 한하운 신동엽 김관식 박재삼 등 작고한 시인들의 생가와 시비를 찾아가 얻은 느낌들을 표현한 작품들이 자리잡고 있다.
강해림씨의 '구름사원'은 오랜 세공 끝에 빚어낸 언어들이 저마다 살아 움직이는 시집이다. 비록 무거운 주제의 작품들이지만 부드러운 운율이 이를 극복해내며 활달한 가락과 선명한 이미지로 독자에게 다가선다.
시인은 화합과 상생을 꿈꾼다. 우리의 의식을 짓누르고 있는 회의와 의문, 무의미, 불협화음, 불임의 시대에 결코 굴복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시인은 이런 '입 쩍쩍 벌린 슬픔'을 뛰어 넘어 붉게 빛나는 희망의 미래를 기다린다. 언어의 틀 속에 웅크리고 앉아 꿈의 시간을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권영호씨의 처녀시집 '바람은 속도계가 없다'에는 생활 주변에서 맞닥뜨리는 현상과 이미지들이 내면이라는 걸름망에 촘촘하게 걸러져 가라앉은 시들이 담겨 있다. 시인은 시집에 담긴 작품들을 '어설픈 마음의 흔적들'이라고 자평하지만 간결하면서도 서정성 짙은 표현들은 시인의 속깊은 시세계를 떠받쳐주고 있다.
한편 이정혜씨의 수필작품에는 어떤 작은 일도 본래의 마음 바탕에 투영시켜 동심을 일깨우는 작가의 역량이 느껴진다. 작품집 전편에 녹아 있는 고향과 가족, 학교, 세상과 이웃의 이야기에는 훈훈한 사랑과 소중함을 간직하려는 작가의 마음살이가 배어 있어 감동의 파장이 더욱 크다.
서종철기자 kyo425@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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