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빈(李廷彬)외교통상부장관이 러시아.미국과의 정상외교 교섭 과정에서 오고간 기밀을 발설한 것은 충격적이다. 이 장관은 23일의 어느정책 포럼에 참석, 미국이 한.미정상회담 교섭과정에서 우리에게 NMD 추진에 찬성해줄 것을 요구했다고 밝히고 잇달아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방한 당시 국회 연설을 통해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준비해 왔다"고 공개했다.
이 장관은 이 발언으로 파문이 일자 미국이 NMD지지를 요청한 것이 아니라 러시아가 NMD 문제를 제기한 것을 잘못 말했다고 둘러대는 한편 러시아가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제기했다는 것도 국민을 위해 보도를 자제할 것으로 당부했다. 우리는 외교사령탑이 이처럼 교섭 기밀을 발설했다가 번복하는 행위는 외교 정책상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외교관의 자질 문제로 비판 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이 장관의 입장에서는 NMD문제와 관련 '명시적으로 동의해줄 것'을 요구하는 미국과 '명시적으로 반대할 것'을 요구하는 러시아의 주장을 이겨내고 한국외교가 승리했다는 점을 강조하느라 미국의 NMD 지지요청을 발설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 푸틴대통령과 ABM의 보존 강화합의로 한미정상회담에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곤욕을 치른 저간의 사정을 감안한다면 이 장관의 이번 발언은 적절치 못한 것이었다고 지적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구나 이 장관이 "러시아가 주한 미군철수를 주장했다"고 발언한 대목에서는 그가 과연 이 나라의 외교 사령탑으로서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 의심치 않을 수 없다. 푸틴러시아대통령이 주한미군 철수 문제를 언급한 것은 김정일(金正日)위원장을 의식한 선심공세이면서 한편으로는 한.러정상회담에서 러시아의 협상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다목적 포석이 있다. 다시말해 미국의 NMD요구와 함께 러시아의 주한미군 철수요구는 국제적인 이해관계가 얽힌 민감한 사안인 것이다. 그런만큼 한반도 문제의 이해 당사자인 우리로서는 이들 문제에 대해 명확하게 의견을 개진하기보다 외교적으로 전략적인 모호성을 보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이런 판국에 이 장관이 미국과 러시아의 속내가 담긴 1급기밀을 누설함으로써 미.러 양쪽 모두로부터 믿을수 없는 나라라는 불신을 자초한 것은 분명 큰 실수를 한 것이다. 이 장관이 항간의 소문처럼 자신의 장관직 교체설에 초조한 나머지 자신의 외교역량을 강변하는 '무리수'를 두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떻든 좀더 신중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강대국 사이에서 국익을 대변하기는 커녕 변명이나 거듭하며 나라 위신에 먹칠이나 하는 저급한 우리외교의 앞날이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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