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천직' 세계 최고령 의사

지난해 우리나라에서도 개봉된 일본 영화 '철도원'은 사라져 가는 가치와 정서를 떠올린 작품이다. 특히 한 가지 일에만 일생을 바치는 주인공의 '천직(天職)의식'이 그 중의 하나다. 자식이 죽어서 돌아올 때마저 깃발을 흔들며 맞이한 역장 오토마츠는 끝내 눈 덮인 플랫폼에서 철도원으로서의 생애를 마감한다. 이 영화가 감동을 자아낸 원동력은 평생 한 직업 종사를 소명(召命)으로 여긴 덕목에 있을 것이다.

▲인간은 살면서 누구나 일을 한다. 그것은 자기의 가치를 만들어 내기 위한 정신적.육체적 활동이다. 그러나 그 빛깔은 다양하다. 호구지책의 생업, 전문가 의식을 동반한 직업, 일을 통해 보람과 기쁨을 누리는 천직이 있다. 베버는 '직업'이란 말엔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임무'라는 뜻을 담은 천직(calling) 개념이 함축돼 있다고 했지만, 우리 모두가 그런 소명감을 가질 때 사회에 적극 참여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영화 '철도원'이 담고 있는 가치관에 비판적인 시각이 있을 수 있다. 지금이 어느 땐데 직업에 대한 맹목적 충성이냐, 직장 옮기는 게 흉될 게 없는 세상에 무슨 일생일업(一生一業) 타령이냐는 사람도 없지는 않을 게다. 더구나 지금은 오로지 한 가지 일에만 매달리는 '외길 인생'이 푸대접받고 퇴출당하는 반면 직장 일보다 한눈 팔던 사람들이 오히려 득세하는가 하면, '나'와 '내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세태가 아닌가.

▲어디 그 뿐인가. 내로라 하는 전문가들도 말끝마다 끊임없이 새로운 세계에 도전하는 개척정신과 모험정신이야말로 21세기적 삶의 지혜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래서 전문직업인으로 일가(一家)를 이룬 사람들마저 느닷없이 정치판에 뛰어들어 금배지를 달아보려고 직업정신과 천직에 대한 소명의식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는 것일까. 그 결과는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눈을 감는 순간까지 진료를 멈추지 않겠다'며 70년간 '인술(仁術) 외길'을 걸어온 세계 최고령 의사 문창모(94) 박사에 대한 이야기는 영화 '철도원'보다도 감동적이다. 그는 최근 손놀림도 둔해져 환자들이 다칠지도 모른다며 자식들이 극구 만류하는 바람에 아쉽게도 가운을 벗었다. 하지만 '별무취미로 도무지 재미가 없는 사람이지만 이런 진료생활을 축복으로 여긴다'는 진정한 히포크라테스적 천직의식은 길이 우리 사회의 귀감이 돼야 할 것이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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