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홍경호 세상읽기-잔챙이들의 거짓말

이 세상에서 가장 보기 민망한 것은 뻔한 일을 놓고 솔직히 그렇다고 인정하지 않고 궁색하게 이것저것 끌어다 붙이면서 변명을 늘어놓는 사람의 얼굴이다. 처음에는 짜증이 나고, 나중에는 연민의 정이 느껴지고, 그것이 거듭되면 끝내는 이쪽에서 구역질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대개 이럴 때는 말하는 사람의 얼굴이 시뻘겋게 상기되고 식은땀을 흘리기 때문에 이쪽에서는 금세 그것이 거짓말임을 알게된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얼굴을 붉히거나 식은땀을 흘리지도 않고 멀쩡한 얼굴로 잘도 거짓말을 하므로 둔감한 사람들은 그것이 거짓말인지 참말인지를 모르고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는데, 이 어리둥절한 꼴을 보고 거짓말을 한 쪽에서는 잘도 속여먹었노라고 쾌재를 부른다.

거짓말 가운데에는 믿어도 그만, 믿지 않아도 그만이어서 듣는 사람에게 별로 해가 되지 않는 무해무득(無害無得)한 거짓말도 있다. 시정 사람들이 웃음으로 주고받는 우스개나 악의 없는 거짓말들이 여기에 속한다. 남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고 또한 해를 끼치고 싶어도 그럴 능력이 없는 장삼이사(張三李四)의 평범한 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래서 행복하다. 이들의 거짓말은 오히려 한 바탕의 웃음으로 삶에 활력소를 주기도 하는데, 소위 믿거나 말거나 하는 거짓말이 이런 것들이다.

하지만 잘난 분들의 거짓말은 이와는 다르다. 이들의 거짓말은 사람을 죽이게도 할 수 있고, 짜증과 구역질을 나게 하고, 끝내는 백성의 심성을 어긋나게 만들기도 한다. 위정자의 거짓말은 이래서 무섭다.

얼마 전에 여권(與圈)의 대표적인 브레인으로 통한다는 황 아무개 교수가 했던 발언은 우리를 놀라게 했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유아시절 발발한 6.25전쟁에 책임이 없으므로 침략범죄 용의자도 아니고, KAL기 폭파를 지휘했다는 증거도 없고 조사할 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그의 사과를 받을 사안이 아니다'.

이런 인물을 대학에서는 교수로 썼고, 이런 인물을 여권에서는 대통령 자문정책기획위원으로 모셨으며, 이런 인물을 집권여당이 의욕을 갖고 설립했다는 이름도 어마어마한 '국가경영전략연구소' 부소장으로 기용했고, 그 잘났다는 국회의원들은 이런 사람을 초청해서 고견을 경청했다.

하지만 정권에 아부해서 곡학(曲學)을 일삼았던 자들의 말로가 어떠했으며, 곡학의 무리들을 동원하여 정권 연장을 꾀했던 과거 정권들의 뒤끝이 어떠했던가는 역사가 누차 말해준 바가 있으므로 그 결과는 볼 것도 없다.

요즘 보건복지부의 이름으로 내고 있는 의약분업 홍보 광고는 어떠한가. 약국에서 약을 낱알 판매 않는 이유를 이 광고문은 다음과 같은 논리로 설명하고 있다. "약이란 언제 얼마만큼 어떻게 먹어야 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낱알을 판매하면 용법을 알 수 없기에 부득이 용법이 적혀 있는 병째로 판다".

광고 전략에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역겨움을 느끼게 하여 광고 효과를 노리는 전법도 있다. 듣기 싫은 내용을 반복 광고하여 역으로 효과를 노리는 수법이다. 이 역겨운 수법을 원용한 것인지는 모르나 너무 한다는 느낌을 지을 수 없다. 보건복지부의 몇몇 잔챙이 관리들의 저 잔머리를 보라!

말을 억지로 끌어다 붙여 조건이나 이치에 맞도록 한다는 뜻으로 견강부회(牽强附會)라는 말을 쓴다. 견강부회도 이쯤 되면 일고의 가치조차 없으므로 입을 열어 말할 것도 없지만 문제는 잔챙이들조차 이제는 거짓말을 배워서 이것을 쓰면서 즐긴다는 데에 있다.

호랑이가 나왔다고 몇 번 거짓말을 한 끝에 끝내 호랑이에게 물려서 죽은 목동의 우화를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우화는 한 목동의 목숨으로 결말이 나지만 오늘의 거짓말에서 피해를 입을 쪽은 목동이 아니라 우리 모두라는 점이 우리의 비극이다.

한양대 교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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