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불법 SW 단속 무엇이 문제인가 긴급 좌담

정부가 검·경, 정통부 등 관계기관을 총동원, 불법SW(소프트웨어) 단속에 나서면서 지역IT(Imformation Technology) 벤처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지난 5일부터 시작된 이번 단속은 다음달 말까지 계속될 예정이며 단속 인원만 21개반 1만6천명에 달한다. 그러나 '정품SW 사용'의 당위성에도 불구, 이번 불법SW 단속은 벤처업계에 엄청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김영문 계명대 교수(한국소호진흥협회장)와 최경규 (주)웰컴정보시스템 대표, 김학병 한국인터넷무역(주) 대표를 초청, 불법SW 단속의 문제점과 합리적인 해결책을 들었다. 업체의 불이익을 우려해 익명으로 처리했다.

▲불법SW 단속에 대한 지역 IT업계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감시카메라가 붐을 이루고 있습니다. 요즘 벤처기업 치고 한 번 노크한다고 문열어 주는 곳은 없습니다. 아예 하드디스크를 분리하고 사무실을 폐쇄한 경우도 있어요. 낮에는 쉬고 밤에 나와 일하는 회사도 많습니다.

-불법 SW단속 때문에 대구시 남구 대명동 소프트웨어진흥센타의 어떤 입주업체는 사무실 철수 의사를 밝혔습니다. 개발업무의 차질을 각오하고 정부단속의 손길이 덜 미치는 '외진 곳'으로 사무실을 옮길 계획이지요.

-정부 단속반은 모든 벤처기업을 범죄자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어떤 단속반은 업체직원도 없는 사무실 문을 강제로 따고 들어가 단속을 했습니다.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 48조는 '소프트웨어 저작권을 보유한 회사가 권리를 침해하거나 침해할 우려가 있는 자를 고소할 경우에 한해 경찰이 수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단속은 영장은 커녕 SW업체의 고소도 없는 상태에서 마구잡이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불과 한 해 전까지 '한국경제의 희망'이라며 벤처기업을 치켜세우던 정부가 돌연 '벤처=범죄자'로 몰아세우고 있어 업계는 울분을 삭이지 못하는 분위기입니다.

▲벤처업계가 불법복제품 대신 정품SW를 사용하면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는 주장도 있는데요.

-그런 주장은 비현실적일 뿐 아니라 한국에서 벤처를 하지 말라는 것과 다를 바 없어요. 불법SW를 근절시켜야 한다는 데 대부분의 벤처인들이 동의하고 있습니다. 또 그렇게 돼야 우리가 개발한 제품도 보호를 받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우리 벤처의 경우 저렴한 국산SW 구입은 별 어려움이 없지만 국산SW보다 10~30배 비싼 외국산 정품을 구입할 수 있을 정도로 재무상태가 좋지않습니다. 더욱이 지난해 코스닥 붕괴로 벤처기업들이 사경을 헤매고 있는 지금 '100% 정품SW 사용' 강요는 '벤처 죽이기'일 뿐입니다.

-우리 벤처기업 대부분은 자본금이 5천만~1억원 규모의 영세업체입니다. 연구개발에 사용되는 외국산 SW는 수천만~수억원을 호가하고 있습니다. 벤처기업들이 쉽게 구입할 수 없을 정도로 정품SW 가격을 높게 책정해 놓고, 정부단속을 앞세워 구매를 강요하는 것은 거대 외국독점기업의 횡포입니다.

▲벤처업계가 사무실을 폐쇄할 정도로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데도 정부가 대대적으로 불법SW 단속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부는 단속에 앞서 "SW 불법복제율(한국 43.7%)이 10% 낮아지면 국내 SW산업 매출액이 1조3천억원이나 증가하고 8만명의 신규 고용이 창출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SW산업을 국가전략산업으로 육성하려면 불법 복제품 단속으로 정품사용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정부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한국에서 SW 불법복제로 피해를 본 업체(액수 기준)의 94%가 외국SW업체이고 이중 한국MS, 오토데스크, 어도비시스템즈 3사가 전체의 85% 이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국내 대기업을 제외한 영세 벤처기업이 개발한 SW들은 이번 단속 대상에서 빠졌어요. 국내 SW산업의 진흥을 위한 단속은 '명분'일 뿐입니다.

-벤처업계는 불법SW 단속 배경으로 최근 열린 '한·미 정상회담'을 의심하고 있어요. 정부가 미국의 통상압력에 밀려 현실을 무시한 채 불법SW 단속에 나섰고 그 불똥이 벤처업계로 번진 것입니다. 실제로 정부의 무차별 단속이 시작되자 마이크로소프트(MS)는 윈도 어드벤스 서버 2000, 윈도2000 서버, 오피스프로 2000, 등 주요 SW 가격을 일제히 올렸어요. MS는 이것도 모자라 한국내 SW 가격이 미국과 비교할 때 비싸지 않다며 향후 1, 2년안에 세계적으로 동일한 SW가격을 적용할 방침이라고 밝혔습니다.

벤처업계와 일부 시민단체들이 "정부가 MS 등의 독점이윤을 보장하는 '영업사원' 노릇을 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불법SW 사용을 근절시킬 합리적 대안은 없습니까.

-정품SW를 구입해 사용해도 벤처기업 운영이 가능한 환경부터 정부가 먼저 조성해야 합니다.

-MS 등 세계적 독점기업들이 비현실적으로 높게 책정한 SW 가격을 구입 가능한 수준으로 낮추도록 요구해야 합니다. 국내기업들이 단체를 결성, 복잡한 외국산SW 유통구조를 개선하고 외국 독점기업과의 협상력을 높일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사)벤처기업협의회가 공동구매계약을 맺고 실시하고 있는 '소프트웨어 임대제도'를 정부차원에서 활성화해야 합니다. 그래야 영세 벤처기업이 비싼SW를 구입하지 않고도 싼 값으로 이용하고, 업그레이드 할 수 있어요.

-'100% 정품SW 사용'이 어렵다면 벤처기업의 자본금 매출액 등에 따라 단속기준을 완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SW구매에 대한 융자나 세제혜택 등 정부차원의 지원책도 검토해야 합니다. 이와 함께 한 번 익숙해진 SW는 쉽게 바꾸지 않는 점을 감안해 초·중·고교 등에서 우수 국산SW 사용을 정책적으로 지원, 국산SW 발전의 기반을 넓혀주어야 합니다.

대담·정리=석민기자 sukmin@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