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새책-정인홍과 광해군, 정조의 나라만들기

조선 15대 왕 광해군과 22대 정조는 어찌보면 닮은 점이 많다. 등극 과정의 파란곡절과 실학을 이념적 바탕으로 한 강력한 개혁정치의 추구, 그리고 안타까운 좌절이 그렇다. 두 임금은 또한 정치력이 뛰어났으며 늘 백성의 고통에 귀 기울였던 군주였다. 정인홍과 홍국영이란 신하와의 운명적인 관계 또한 유사한 점 중의 하나이다. 최근 나온 '정인홍과 광해군'과 '문화군주 정조의 나라만들기'란 책은 두 개혁군주의 정치역정과 풍운의 삶을 잘 조명하고 있다.

서자에다 차남이었던 광해군은 등극과정이 험난했지만 왜란으로 초토화된 나라를 단기간에 복구하는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다. 그 '기적'같은 전후복구에는 대북파 실학자들이 있었고 그 핵심에 남명 조식선생의 수제자인 정인홍이 있었다.

왕권확립을 위해 동복형과 선왕의 적자인 영창대군을 죽이고 계모 인목대비를 유폐시키는 등 폐륜행위가 반정의 명분을 제공하는 바람에 개혁정치가 비운의 막을 내리기는 했지만….

조여항이 지은 '정인홍과 광해군'(도서출판 동녘)은 오랜 자료조사와 철저한 답사를 통해 조선중기의 역사를 정인홍과 광해군 등 진보파(대북파)를 중심으로 재조명한 소설같은 역사책이다. 사도세자의 아들이었던 정조 또한 등극 전후에 '죄인의 아들은 임금이 될수 없다'는 반대와 암살음모에 부딪치는 곡절을 겪었다. 할아버지 영조의 보위를 이은 정조는 탁월한 결단력과 정치적 수완을 가진 임금이었다. 그는 개혁가이자 문화군주였다. 규장각 확대를 통한 문벌과 당파를 떠난 인재 등용, 청나라의 선진문물의 과감한 도입, 인권정책, 실학운동, 대중문학의 유행 등. 정조의 학자적 소양에 기인한 문화정책 추진과 실용적인 선진문화 수입은 조선후기의 문화적 황금시대를 이뤘다. 이같은 정조의 문화정치를 역사학자 이이화씨가 15번째 한국사 이야기 '문화군주 정조의 나라만들기'(한길사)로 엮었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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