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서양미술사(잰슨 지음·최기득 옮김)

미술의 역사란 그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미술품을 나열해보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인간이 뭔가를 끄적이기 시작한 8천년 전부터 오늘날의 미술사에 이르기까지 미술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인간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갖가지 사건과 변화, 사랑과 전쟁, 희망과 절망들이 미술의 역사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굳이 미술의 근원적인 문제와 연결짓지 않더라도 대구예술대 최기득(45)교수가 우리말로 옮긴 잰슨의 '서양미술사'(미진사)는 우리에게 서양미술은 무엇인지를 교과서적으로 정확하게 알려준다. 말하자면 서양미술을 객관적으로 느껴볼 수 있는 종합 미술서라고 할 수 있다.

대구시미술대전 대상수상작가이기도 한 역자 최씨는 "미술이라는 형식을 통해 우리의 삶과 대조해 부족하거나 필요한 부분을 밝혀내고 세계와 인간 존재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 이책을 꼭 읽어보라"고 권한다.

"일반인이 미술에 대해 갖고 있는 고정관념이나 단편적인 발상을 없애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는 최씨는 미술이라면 으레 '모나리자'같은 우아한 초상화나 감상적인 풍경화, 정교한 정물화를 떠올리고, 화가라면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괴짜 피카소, 불운한 인간으로 반 고흐나 이중섭 정도를 입에 올리는 것을 과감하게 탈피하라고 말한다. 즉 '미술' 또는 '화가'의 표피적 현상과 가십성 얘기거리만 치중할 뿐, 그 시대의 문화적 상황과 그들의 의식과 심성을 이해하는 부분에 대해선 소홀하게 다루는 접근방식을 지양해야한다는 것이다.

"우리 미술계는 물론이고 일반인조차 서양 미술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너무 수동적이고 무비판적이어서 작품을 제작하거나 작품의 가치 판단을 하면서도 서양미술을 참조하고 곁눈질하는 풍토에 익숙해 있다"고 비판한 최교수는 이 책이 서양인과 서양문화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나 무비판적인 수용을 억제하고 서양을 향해 적극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열린 안목을 갖추는 일에 자그마한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 책은 고대 세계, 중세 미술, 르네상스·매너리즘·바로크, 근대 세계 등 크게 4부로 나누는 시대적 서술방식을 따르면서 서양미술의 사료적인 가치에 중점을 두고 체계적이고 분석적인 접근법을 택한 점이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와 크게 비교된다.

잰슨의 '서양미술사'는 역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객관적인 서술에 치중한 반면,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는 저자 자신의 관점에 따라 미술의 본질과 감성적인 면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

이 책은 20세기 현대 미술의 동향을 알고자 하는 이에게는 괜찮은 지침서로 활용할 만 하다. 20세기를 1차대전 이전, 1·2차대전 사이, 2차대전 이후 등 시대별로 나눠 회화, 사진, 조각 등 분야를 자세히 조망했다. 잰슨은 20세기에서 미술가의 역할을 이렇게 정의했다. "모더니즘을 통해 미술가들은 시대가 처한 상황과 그 의미를 정의 내려야 하는 임무를 떠안은 동시에 심지어 미술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켜야 하는 책임감을 느끼게 됐다. 요즘처럼 강렬한 도전 의식을 표명하거나 개인적인 동기를 열정적으로 실천한 적은 일찌기 없었다"

한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그림과 건축물이 몇개씩 등장할 정도로 도록이 풍부하다는 점은 다른 책에서 볼 수 없는 강점이다. '작품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감상 입문서도 초보자에게는 유용하다.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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