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벽부터 봄비가 내렸다. 꽃소식을 더 빨리 재촉해서 좋고, 건조경보속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산불예방에 큰 몫을 하는 그야말로 '금(金)비'이다.
'임야 몇ha의 소실을 막았으니 얼마의 이득을 봤다'하는 단순한 산술적 계산보다 갈피를 못잡는 우리들의 마음을 다잡아 주는 진정제 역할을 하는 빗방울이기 때문이다.
시인 김동환은 '산너머 남촌에는'이라는 시에서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불어오고, 그 훈풍속에 좋은 소식 한가지 정도는 실어 오리라'고 노래했다.
이 봄에 따뜻한 바람과 촉촉이 내리는 비가 그리운 것은 지난 겨울 유난히도 매서웠던 칼바람과, 강원도 고성에서 발화돼 경북 울진까지 번진 지난해 이즈음의 산불이 그만큼 무서웠기 때문이리라.
그럼, 경제계의 봄바람은 어디로 갔나.
요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TV드라마 '왕건'에 나오는 기적의 '경제 남동풍'이 불어와 우리들의 답답한 심정을 탁 틔게 해줄 수는 없을까?
최근 현대경제연구원이 조사한 '가계소비의 특성과 시사점'에 관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일반 서민들은 주요 경제변수중 실업확대와 물가상승을 가장 크게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들이 가계를 꾸리는 데 가장 큰 걱정거리가 '실업과 물가'라는 게 압축된 생각이다. 이 연구원이 전국의 기혼남녀 820명을 대상으로 한 전화설문에서 '한달 고정수입이 100만원 늘어난다면 어떻게 나눠 쓸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평균적으로 약 26만9천원을 소비하고 48만7천원은 저축, 24만4천원을 부채상환에 쓸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늘어나는 소득중 27%만 소비하겠다는 것은 아직도 서민들의 소비심리가 경기 침체에 따라 극도로 위축되고 있음을 반영하고, 24%를 '빚을 갚겠다'는 것은 대부분 가정들이 빚을 내 힘겹게 생활하는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 응답이다.
빚지고 사는 사람들이 어디 서민들뿐인가. 백수신세의 실업자들….
서릿발같은 IMF체제의 그늘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장기 실업자들은 대다수 이미 빚쟁이에게 쫓기고 있는 신세일 것이다. 그들은 '한번 실업은 영원한 실업'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며 가슴을 치고 있다. 극복되지 않는 생활고에다 가정파탄까지 부른 '옷 벗은' 세월의 고통에 봄기운마저 느낄 수 있을까. 푸른 꿈을 펼칠 앞날이 구만리같은 대졸자 등 새내기 실업자들은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도 전에 좌절감부터 맛봐야 하는 게 현실이다.
실업자 100만명 시대.
그들은 정부가 수차례 발표한 실업대책이 '무늬뿐'이라며 불평하고 주부들은 졸라맬 허리의 공간도 없다고 아우성이다. 왜 이 지경인가?
맹자는 양혜왕편상(梁惠王篇上)에서 왕도를 논하면서 이같이 말한다. "일정한 생업이 없으면서도 언제까지나 착한 마음을 지속해 갈 수 있는 것은 확고한 교양을 지닌 사람뿐입니다. 서민에 이르러서는 일정한 생업이 없고 보면, 의당 변치않는 선심같은 것은 금세 없어지고 맙니다"
백성들에게 생업을 주어 생활을 안정시키고, 그 다음에 예(禮)와 인(仁)을 지니도록 그들을 인도하는 게 왕자(王者)의 의무라는 얘기. 무항산(無恒産)이면 무항심(無恒心)이라는 논리를 요즘 위정자들이 곰곰이 새겨볼 대목이다.
엊그제 대폭적인 개각이 단행됐다. 경제팀의 특징은 '거시경제팀 유임-실물경제팀 교체'라는 분석속에 잦은 장관교체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만만찮다.
경제계·업계·국민들은 새 경제팀에게 정책실패로 불거진 문제점을 빨리 해소하고 침체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기업과 가계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것을 한 목소리로 요구하고 있다. 갈팡질팡하는 정책시행은 이제 끝내야 한다.
많은 일자리를 창출해 고용을 안정시키고 기업가들에게는 항심(恒心)으로 공장을 돌릴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 주부들에게도 가벼운 발걸음의 시장나들이가 되도록 해야 한다.
헌법에 명시된 '행복추구권'이 저소득층이든, 실직자든,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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