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인류의 절망

신라시대의 화랑 관창(官昌)은 충효정신이 뛰어나 지금까지 칭송을 받아왔다. 16세의 소년이었지만 아버지 품일 장군의 명령에따라 여러차례 적진으로 돌진한 끝에 목숨을 버림으로써 백제의 계백 장군이 이끄는 용맹한 결사대를 황산벌에서 꺾게했고 그것이 삼국통일의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시대 일부 유학자들은 그같은 효도와 국가적 공로에도 불구하고 나이 어린 소년을 홀로 적진에 뛰어들어 전사케한 것은 후세에 교훈이 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관창의 경우와는 다르지만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오랜 민족갈등이 최근에 와서는 10개월짜리 젖먹이와 젊은 남녀의 순수한 사랑의 희생을 매개로 삼고있는 현상은 새삼 섬뜩함을 안겨준다. 민족이나 국가의 사활이 걸린 전쟁터에선 예나 지금이나 승리만이 지상최고의 가치라는 전쟁의 논리는 어떤 수단이든 합리화하기 일쑤다. 중동전도 이제 그같은 논리의 마지막까지 이른 느낌을 준다.

◈한쪽이 다른쪽편 영아를 저격수를 동원해서 살해하고, 한쪽편의 젊은 여인이 다른쪽 젊은 남성을 사랑으로 유혹해서 죽이면서 끝없는 증오와 피의 보복을 부르는 지금의 중동전은 인류의 절망을 보는 듯하다. 인류가 미래를 약속받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어린이와 사랑이라 할 수 있다. 중동전은 어느 민족의 승리보다 양쪽 모두가 미래를 버리는 싸움에 휘말려든 종말적 상황이다.

◈지난 세기에는 좌우이념대결을 종식시키면서 세계는 인류공멸의 재앙을 가져올 수 있는 핵무기감축에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지금 중동에는 히로시마에서 7만명을 한꺼번에 죽게한 원폭보다 더 무서운 인류의 미래를 죽이는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어린이 납치와 인신매매, 미성년여성매춘, 원조교제 등등은 이런 싸움을 통해 더욱 넓게 전염될 것 같다. 사랑과 어린이를 희생시키는 중동의 이같이 파멸적 싸움이 제발 다른 세계를 더 이상 오염시키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홍종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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