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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최종진 논설위원

탁구는 우선 좁은 공간에서 여러각도로 퍼붓는 공격과 방어가 돋보이는 경기다. 2.66g(2000년 10월 이전은 2.43~2.53g)의 공이 사각의 녹색테이블을 상당시간 오고가면 관중들은 숨을 죽이게 마련이다. 공격속도가 갑자기 붙고 느려지는 긴장감은 이 경기에 관심이 집중되는 원인이 아닌가 싶다. 선수끼리의 신체접촉이 없어 심판 판정을 둘러싼 시비가 전무(全無)한 특징도 있다. 그만큼 잡음이 없어 물흐르듯 무리가 없는 경기진행은 자연에 대한 인간들의 순응(順應)과 닮은 모습이다.

냉전시대에 늘 긴장상태에 놓여있던 중국과 미국의 관계를 해빙무드로 물꼬를 튼 매개물은 탁구였다. 71년 4월13일, 관중 1만8천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미국과 중국 남녀선수단이 탁구경기를 벌였다. 그 당시로는 생각도 못할 일이 벌어진 것이다. 미국선수단 15명이 중국땅을 밟은 것은 4월10일. 이들은 1949년 10월 모택동이 주도하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이래 중국땅을 공식방문한 미국인이었다. 이 탁구경기는 20세기 후반 새로운 국제질서의 새로운 장(章)을 여는 '미-중 핑퐁외교'로 세계인들의 기억속에 자리잡고 있다. 우리 배달겨레도 탁구를 매개물로 감격해 울고 웃었다.

남북분단 46년만인 91년, 일본 지바에서 열린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남북이 단일팀으로 출전했다. 여자단체전에서 우승을 따낸 코리아팀의 현정화와 이분희 등은 감격에 겨워 울음도 목메어 삼켰는지도 모른다. 하나된 남북앞에 불가능이란 없었고 '호흡도 통일', '덩실덩실 춤도 통일'이었다. 10년만에 남북 탁구 교류를 기대한 오사카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북단일팀 구성이 무산됐다. 안타까운 일이다. 오는 4월3일부터 5월6일까지 열리는 이 대회에 같이 출전키로 한 약속을 북한이 깨고 단일팀 불가를 통보해온 이유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최근 북한이 정주영 전 현대명예회장의 빈소에 사상 처음 조문사절을 파견한 것을 감안하면 이 돌발행동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문화부는 스포츠 외적인 북한의 내부사정이 단일팀 구성을 어렵게 했을 것이라고 추측은 하고 있다. 어쨌든 본격적인 남북 스포츠 교류의 계기가 깨진 것이 아쉽다. 단일팀 구성이 가져다줄 상징적 의미의 상실도 마음을 아프게 한다. '지바정신'으로 경평(京平)축구 부활, 남북태권도대회 공동개최 등을 본격적으로 협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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