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7세 전업주부 윤선아씨

"아줌마, 포장해 드릴까요?"서른일곱 살의 주부 윤선아(대구시 달서구 상인동 낙원아파트)씨는 빵집 주인이 부르는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아줌마라니? 비록 아이를 둘이나 낳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처녀적 몸매를 유지하고 있지 않은가. 청바지에 티셔츠 하나만 걸쳐도 대학생 소리를 들을 수 있을 텐데…. 어떻게 내가 무디고 펑퍼짐한 몸매에 짧은 퍼머머리 이미지인 아줌마로 불릴 수 있단 말인가'.

결혼한 지 9년째. 학부모인 윤씨는 오늘도 초등학교 1학년 아이의 교실청소를 위해 학교로 가는 길이다. 빈 손으로 선생님을 대하기가 어색해 빵집에 들렀던 것. 근래 들어 아줌마로 불리는 경우가 부쩍 잦다. 아무래도 쌍꺼풀 수술이라도 해야할까 보다. 집에 가서 청바지로 갈아입을까?

사실 윤씨는 학부모로서 학교에 가는 게 처음은 아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큰 아이 교실청소다, 환경미화다, 현장학습이다 해서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아이가 입학하면 최소 2년은 엄마가 같이 학교에 다녀야한다는 말을 실감하곤 했다. 친정아버지가 교사였기 때문에 학교와 선생님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가끔은 학교가 학부모를 너무 부려먹는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동네 아줌마들도 윤씨를 두고 치맛바람이니, 어쩌니 수군대지만 뭐, 어쩌랴. 내 아이를 위한 일인데….

집에 돌아오면 미술이다, 피아노다 애들 학원보내기 바쁘다. 영어학원도 보내야 할텐데…. 빠듯한 형편이 원망스럽다.

참, 시장갈 시간이 됐다. 남편이 일찍 퇴근하기 때문에 윤씨에게 오후 시간은 여유롭지 않다. 오전 몇시간이 자신을 위해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일 뿐. "요즘은 인터넷에 푹 빠졌어요. 이젠 개인 음악방송국을 운영할 정도가 됐죠". 컴퓨터학원 한번 안가보고 혼자 배웠으니 스스로 대견하다는 생각도 든다. 다만 그걸 몰라주는 남편이 야속할 따름이다. 시(詩)동호회에 가입, 문학소녀가 돼보는 것도 또다른 즐거움이다.

저녁은 나름대로 진수성찬(?)을 차리려 애쓴다. 아침을 빵으로 때우는데 대한 미안함의 보상이다. 그러나 따져보면 미안할 일도 아니다. 밥 먹는 시간을 아껴 10분이라도 더 자겠다는 남편의 치밀한 계산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한번 막내는 영원한 막내. 막내라서인지 잘 삐치는 남편과는 아이들 교육에 관한 견해차 말고는 별다른 갈등이 없는 것이 다행이다. "아이들과 씨름해 다잡아 놓으면 남편이 퇴근해서 확 풀어놓죠. 속 터질 일입니다".

요즘들어 윤씨에겐 이런 과정을 죄다 거쳐간 인생선배들의 충고가 부쩍 자주 되새겨진다. "아이에게 엄마 손길이 필요 없어질 날이 곧 닥칠거야. 그러면 아이들과 대화조차 잘 안될 만큼 자기관리에 소홀한 푹 퍼진 아줌마가 되고 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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