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혼란의 와중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 혼란의 원인은 단지 IMF한파 때문만이 아니다. 대우재벌이 몰락하고 동아건설이 해체되고 현대건설이 위기에 내몰렸기 때문만도 아니다. 더 심각한 원인은 변화의 물결속에 일어나는 가치관의 혼란, 질서와 안정의 주류를 이끌어 갈 권위와 기강의 해이에서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런 상황속에서 인간은 과학의 진보라는 이름으로 조심없이 창조주 노름을 하려고 한다. 인간복제와 배아복제가 인류에게 가져올 큰 재앙을 외면한 채, 당장의 유익이나 국가경쟁력제고 따위를 앞세워 심지어 인간을 조작하고 만드는 일에 골몰하기도 한다.
지금 우리들은 마치 각자 자기소견에 좋을대로 살아가는 시대를 맞이한 것같같다.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라면 뱀과 개구리, 곰의 발바닥도 부족해 살아있는 곰에게서 웅담을 채취하려 혈안이 되어 해외로까지 몰려다니는 꼴이 되었다. 타인의 건강과 미래세대의 자연과 환경의 유산을 잘 보존해 넘겨주려는 배려는 거의 고갈된 상태이다.
자신의 건강에는 그토록 열심이면서도 타인의 건강과 생명에 대해서는 그토록 냉담할 수가 없다. 우리사회에서 소리없이 죽어가는 태아는 연간 150만명에 육박하리라는 추산이다. 직업병과 환경오염으로 죽어가는 환자수도 증가일로에 있고, 자살과 살상범죄도 증가하는 추세이다. 교통사고로 인한 사상자는 세계적인 선두기록경쟁에 끼어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법과 질서가 해이되었기 때문에 이같은 일탈이 범람한다고 한다. 법과 질서가 무너지면 무법과 무질서는 따라오기 마련이다. 법과 질서는 재 무너졌고, 어떻게 해야 이를 회복시킬 수 있을 것인가. 그 까닭은 법공동체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정서속에 양심이 실종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양심이 부패하면 더불어사는 삶의 지혜나 최소한의 윤리와 에티켓도 사라지고 만다. 남의 눈에 띄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자기소욕대로 행동하고, 심지어는 남이 보는 앞에서 남에게 고통과 괴로움을 주기위해 악행을 일삼기조차 한다.
이같은 혼란을 치유하려면 정의로운 법의 제정과 실시가 필요하다. 그리고 법집행기관이 공정하고 신중한 법집행에 임함으로써 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높여야 한다. 법을 편의대로 사용한다거나 법만능주의에 빠지면 오히려 법의 권위를 잃고 만다.
그러나 진정한 법의 수호자는 각 사람의 마음속에 공유된 양심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양심은 결코각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다. 각자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하는 것은 실제 양심이 아니다. 독선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양심은 공동체의 모든 이웃들과 더불어 누리는 지식이요, 사유체계요, 행동양식이다. 공정하게 사유하는 평균인이 건전한 사회생활을 하는데 옳다고 승인할 수 있는 공유된 기준이 양심이다.
양심은 그렇기때문에 고통당하는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연대적인 아픔으로 끌어안고 그 아픔을 나누어 지고가는 헌신과 자기희생의 원천이기도 하다. 양심은 그래서 때때로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들에 평화의 교란자로 비춰질 수 있다. 그러나 양심의 저항이 없으면 정의로운 법질서가 세워질 수 없다.
오늘날 혼란스러운 현실앞에 진정 우리가 가슴아파해야 할 일은 이같은 양심의 소리가 희귀할 뿐 아니라 그것을 듣는 귀도 어둡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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