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은 온통 연분홍빛이다. 봄이 한창 피어나는 곳이다. 사람들은 그 봄기운을 맞으러 섬진강을 찾는다. 산바람이 아직 매섭긴 하지만 연분홍 매화꽃과 반짝이는 은빛 강물, 푸른 빛 대나무숲이 이루는 조화는 한 폭의 동양화다. 지금 섬진강 일대 꽃그늘에는 전국에서 매화마을 꽃구경을 나온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다.대구에서 두시간 반 남짓. 구마고속도로를 거쳐 남해고속도로를 타다 하동IC에서 19번 국도로 옮겨 탄다. 하동에 들어서면 바로 꽃길이 시작된다. 길 양켠 벚나무 가로수가 당장이라도 터질 듯 꽃망울에 살이 잔뜩 올라있다. 4월이면 활짝 필 전망이다. 꽃샘바람이 심술을 부려도 차창을 넘어 들어오는 봄바람이 가슴속까지 시원해진다.
하동에서 광양으로 이어지는 섬진대교를 건너면 가파른 산비탈마다 매화꽃 구름이 내려앉아 있다. 길가에 차를 세워두고 잠시 매화꽃 향기에 취해본다. 강변엔 광활한 백사장이 펼쳐져 있고 백사장 주위에는 어른 손목 굵기만한 대나무숲이 둘러쳐져 있다.
섬진강을 오른쪽으로 끼고 달리는 861번 지방도로. 19번 국도 못지않게 멋진 드라이브 구간이다. 매화마을서 내쳐 달리면 구례.남원으로 이어진다. 길 중간 중간에 깔끔한 휴게공원이 조성돼 있고, 차량통행마저 뜸해 한적한 드라이브의 멋을 더해준다. 섬진강의 봄은 이 두 길가에 모두 나앉아 있다.
매화마을로 가는 길 곳곳에서 이지역 특산물 '벚굴'을 파는 아낙들을 만난다. 벚꽃이 필 무렵 모습을 드러낸다 해서 벚굴이라 불리는 껍데기가 어른 손바닥만큼 큰 이 굴은 하루 2번 들고 나는 섬진강 물이 빠질 때 어부들이 잠수하여 캐낸 것이라고. 알 하나가 두부모처럼 잘라서 여럿이 먹을 수 있을 만큼 굵다.
섬진대교를 지나면 광양시. 5분쯤 달리면 섬진나루다. 몇 척의 나룻배가 떠있는 전형적인 촌나루다. 다시 5분을 더 달리면 바로 매화마을. 눈이 부시다. 산비탈이 온통 꽃동산이다.
이곳 매화마을은 원래 밤나무가 많던 곳. 그러나 지금 이 마을 70여가구 가운데 약 60가구가 매화나무를 키운다. 4만여평에 10만여 그루의 매화나무가 섬진강을 굽어보며 자태를 뽐내고 있다. 매화마을은 행정구역상 전라남도 광양시에 속하지만 생활권은 경상남도 하동에 가깝다. 공교육을 제외한 아이들의 사교육은 하동에서 이뤄지는 게 대부분이며, 주민들의 일상생활도 마찬가지다.
매화마을을 찾는 관광객은 전국에서 평일 3천~4천명 정도. 주말과 휴일에는 2만~3만명에 이른다. 이곳 매화마을의 터줏대감격인 '청매실 농원'으로 들어가는 길(861번 지방도로)은 휴일이면 섬진대교서부터 옴짝달싹 못한다. 다행히 강 옆 논에 임시 주차장을 조성, 숨통을 터주고 있다.
'청매실 농원'에는 사진작가와 문인, 화가들도 봄빛 영감을 얻기 위해 많이 찾는다. 매화축제(3월 17일~31일)가 열리고 있는 동안에는 꽃을 배경으로 한 사진촬영대회, 농악대 놀이, 초상화와 캐리커처를 그리는 거리 화가들이 농원 앞마당을 차지한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은 장독대 아랫길을 지나 오르는 능선. 이쪽 능선으로 오르면 반대쪽 능선엔 사람이 꽃에 파묻혀 보이지 않는다. 꽃을 배경으로 행복한 표정들. 꽃인가, 사람인가. 모두들 함박 웃음을 머금고 있다.
'청매실 농원' 안주인 홍쌍리(58)씨는 "이곳 항아리 2천200여개에서 숙성되는 매실 제품을 밥상에 올리면 약상이 된다"며 "매실은 망종을 지나 씨가 잘 안깨지는 6월 10일∼25일 사이가 구입 적기"라고 귀띔한다.
여행도중 하동에서 재첩국 맛을 보는 것도 빠뜨릴 수 없다. 저마다 원조라고 자랑하지만 구태여 원조를 따질 일도 없을 만큼 맛도 평준화돼 있다. 맑은 빛이 도는 우윳빛에 간간이 모래가 살짝 씹힐때마다 이맛살이 찌푸려지지만 그래서 더 토종같이 느껴진다.
노진규기자 jgroh@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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