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선정했던 .신지식 농업인'조차 무너졌다. 이제는 물량이 모자라 사과 값이 10배로 뛰었으나 저장비를 감당치 못해 헐값 처분했던 농민들은 지금 빈손이다. 값이 내려도 소비는 줄어 정부 창고에선 쌀이 묵어나고 있다. 많은 농민들이 뒤늦은 나이에 다시 이농길을 나서고 있다.
인터넷을 이용해 1998년부터 장미꽃 10만 달러어치 이상씩을 매년 수출해 .신지식 농업인'으로 선정됐던 군위 홍모(52.우보면)씨가 화훼농장(4만여㎡) 경작을 포기하자, 지역 농민들이 충격에 휩싸였다. 정부 지원으로 30억원을 들여 만들었던 그의 하우스에선 장미 400여만 포기가 말라 죽어가고 있다.
맨바닥에서 외국어 사전을 뒤지며 인터넷을 독학해 장미 재배 신기술 .아칭 재배법'을 개발함으로써 고품질 장미를 생산해 비싼 값에 수출했던 홍씨는 "자식 같이 애지중지 가꿔 온 장미를 뽑아 없애야 하는 비통한 심정을 누가 알겠느냐"며 나라를 원망했다.
그가 어려움에 부닥친 것은 IMF여파가 현실화됐던 1998년 이후. 그런 상황에서 두 차례의 수해.태풍이 겹쳤고 .스승의 날 꽃 선물 금지' 등 정부의 조치들까지 목을 죄었다. 그러나 하우스 난방 기름값과 농자재값.인건비는 계속 오르기만 했다. 위기는 홍씨에게서 그친 것도 아니다. 그에게 자금을 지원했던 효령농협마저 엄청난 자금 압박에 몰렸다.
쌀 농사도 예외가 아니다. 물가는 오르는데 쌀값은 떨어져 지금은 전 보다 1만∼2만원씩이나 낮은 17만원대(가마당)를 형성하고 있다. 소비가 줄었기 때문. 지금 농협 등 정부양곡 창고에는 벌써 출하됐어야 할 쌀이 재고로 꽉꽉 쌓여 있다. 구미 농협 관계자는 "구미 시내 35개 정부양곡 창고에는 1998~2000년 산 쌀이 40만 가마나 쌓여 있다" "1998~99년 산 구곡(舊穀)의 처리가 난감하다"고 했다.
수확 당시 상자당 3천∼4천원씩에 출하되던 사과는 지금 값이 그 10배로 올랐다. 저온저장고도 텅텅 비었다. 품귀 사태. 그러나 농민들의 손에는 돈이 없다. 비싼 저온저장비 때문에 헐값으로 이미 팔아 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빚어지자 아예 나무를 몽땅 베어 없애는 과수원 폐원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그러나 농민들은 대체작목도 찾지 못하고 있다.
농민들의 영농 포기가 많아지자 사료.비료.농약 등 농자재 판매상들까지 사양길이다. 올해 매출은 예년 보다 20~30% 줄었다고 했다. 구미의 농자재상 박모(50)씨는 "영농 시작기인 3월이면 농민들은 으레 일년치 농자재를 미리 구입하느라 주문이 쇄도했으나 올해는 그런 현상 조차 없어졌다" "이번 달 매출이 비료는 20%, 농약은 10%, 시설자재는 30% 가량 줄었다"고 했다.
옛날에는 자녀 공부를 위해서라던 이농이 이제는 낮은 소득과 암울한 전망 때문에 초래되고 있다. 경북도내 귀농자는 1998년 1천171명, 99년 689명, 2000년 191명 등으로 계속 줄었다. 토박이 농민들의 탈농도 마찬가지. 농촌지역 곳곳에서 영농기피 혹은 영농포기 사례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농산물 소비가 부진해 값은 떨어지는데도 자유무역협정(한-칠레), 축산물 수입 완전 개방, 광우병 파동 등은 잇따르니 한 작목도 성한 것이 없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적잖은 농민들은 "농산물 가격 지지, 직접지불제 확대 등 특단의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결국 우리나라 전체의 농업 생산기반 붕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구미.김성우기자 swkim@imaeil.com
군위 정창구 기자 jc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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