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대구 ㄱ대병원. 이 병원 수련의 출신인 군의관 ㅁ (35)씨가 제대후 경북지역 ㅇ병원에서 1년간 근무해 달라는 지도교수의 요청을 뿌리치고 개인의원을 열겠다고 버텼다. 개원전의 중소병원 근무는 이 과의 불문율. 제자의 '반란'에 당혹해하는 지도교수는 "과거에는 개원 장소까지 지정해 줄 정도로 교수의 권위는 절대적이었는데…"라며 씁쓰레해 했다.
엄격한 상하관계를 유지해온 의사사회의 질서가 급속히 무너지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의료파업 이후 전공의 위상 부상 △전문의 대량 배출에 따른 개업 경쟁 △신세대 의사들의 개인주의 풍조 등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란 풀이다. 상당수 젊은 의사들은 "한국에서 대표적 권위주의 사회로 남아있는 의료계 풍토가 미국식 합리주의로 옮겨가는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지난해 의료분쟁 당시 전공의들이 파업 주도세력으로 떠오르면서 의사사회 내부에서 전공의의 위상이 크게 높아졌고, 병원에서도 발언권이 강해지고 있다. 파티마병원 신동건(39·내과) 과장은 "과거 전공의들이 교수나 스태프에게 건의를 하거나, 다른 의견을 말하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었지만 전공의 파업이후 어떤 일을 결정할 때 오히려 스태프가 전공의의 눈치를 보는 경향까지 있다"고 말했다. 같은 과내의 엄격했던 선후배간 위계 질서도 바뀌고 있다. 선배의사가 며칠씩 세우는 '벌 당직' 전통도 사라졌다. 대구가톨릭대학병원 조성경(57·마취과) 교수는 "종전에는 의국(같은 과)선배나 교수가 개인 사정으로 당직을 서지 못하면 후배 전공의가 대신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으나, 요즘은 거꾸로 선배가 후배의 당직을 대신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라고 전했다.
계명대 동산병원 조호찬(28·내과 레지던트 3년차)씨는 "저널이나 사진을 찾아오는 잡무는 연차가 낮은 후배들 몫이었으나, 요즘은 자신의 일은 자신이 하는 관행이 정착되고 있다"며 "분위기가 권위적인 과에는 인턴 지원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북대병원 송정흡(41·병원관리학) 교수는 "의사 배출이 많아지고, 교수가 제자의 장래를 책임져 줄 수 없게 되면서 도제적 사제관계가 붕괴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의 배출이 연간 3천여명에 이르면서 개원이 폭발적으로 늘자, 의사사회가 삭막한 경쟁관계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교수는 "후배의사가 같은 의국 출신 선배의 병의원 인근에 개원을 해 서로 얼굴을 붉히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종균기자 healthcar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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