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안병준 칼럼-국과관리체제 제도화하자

국가관리체제가 제도화되어야 좋은 정책이 이행될 수 있다. 이것은 최근에 의료보험재정 파탄과 국가미사일방어(NMD) 파동이 남긴 교훈이라 하겠다. 국민복지와 국가이익을 보장하는 정책을 산출하기 위해서는 진실이 권력자에게 전달되고 정책집행을 평가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의약분업을 실시한지 일년도 못된 시점에서 왜 엄청난 재정적자가 일어나고 있는가? 왜 우리와 직접 관련이 없는 탄도요격미사일(ABM)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을 지지해 NMD에 대한 미국의 오해를 불러 일으켰는가? 이에 대한 내부정책결정과정을 잘 알지 못하므로 제3자가 충분한 설명을 하기는 어렵다. 그런데도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정책당국이 이 두 쟁점이 초래할 파문을 사전에 알았다면 그러한 결정에 도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추측컨데 현실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정책과정에 제대로 환류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한 사태가 일어났을 것이다.

이는 우리의 국가관리체제가 효과적으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따라서 우리는 누구를 탓할 것이 아니라 철저한 사후분석을 실시해 앞으로 이와 비슷한 실패가 재연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따지고 보면 1997년에 들이닥친 외환위기도 당시 관계당국이 우리의 외환보유고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기에 초래되었던 것이다. 의약분업을 실시한지 일년도 채 되지 않은 오늘 과연 관계부처는 재정적자가 4-5조원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말인가? ABM에 대한 한.러공동성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아무도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다면 이 또한 납득하기 어렵다.

이러한 실책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가지 점이 정책과정에 실현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현황에 대한 진실과 정보가 잘 환류되고 솔직한 반대의견의 제시도 허용되어야 한다. 둘째 정책집행과 그 결과를 보다 객관적으로 감독하고 평가하는 활동이 보장되어야 한다. 일이 터지고 난 뒤에야 각종 감사를 할 것이 아니라 사전에 그리고 집행과정에 이러한 비판과 검토가 계속될 수 있도록 각종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그러해야만 효율성과 정당성을 겸비한 국가관리(서구에서는 이를 Governance라고 함)를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오래 지속될 수 있는 관행과 규칙들을 제도로 정착시키지 않고서는 사람들만 빈번히 바꾸어본들 큰 실효를 거둘 수 없다.

특히 한국과 같은 권위주의 및 연고주의 정치문화에서는 반대의견의 제시를 제도적으로 보장할 필요가 있다. 권력이 한 곳에 집중되면 관료들은 상부의 눈치를 살피고 '집단사고'를 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을 지양하기 위해서 제2차 세계대전때 영국의 영웅 마운트바탄 제독은 부하들 중 장교 한사람으로 하여금 항시 그에 반대하는 의견을 꼭 말하라고 조치했던 것이다. 이를 곧 '악마의 주장'(Devil's advocate)이라고 한다. 미국 핵잠수함의 창시자였던 릭코버 제독도 그의 은퇴를 기리는 상원청문회에서 무조건 복종하는 폐습의 위험성을 지적한 바 있다. 당시 상원의원들은 "백악관에서 근무하는 대통령 보좌관들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이 때 릭코버 제독은 '그들은 쓸데 없는(good for nothing) 사람들'이라고 대답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대통령의 말이 끝나자마자 항시 '각하, 저는 전적으로 동감입니다'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참으로 훌륭한 참모는 상사에게 과감히 '아니오'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물론 다수의견을 청취한다고 해서 정책이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그렇지만 소수의 의견 청취가 실수를 줄이고 이해와 정당성을 늘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된다. 역사에서 우리가 교훈을 배우지 못하면 실수를 반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복지와 안보정책도 일정한 토론과 분석에 근거해 결정하는 국가관리를 우리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제도화해 가야 할 것이다. 연세대 교수.국제정치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