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임재해교수가 새로본 신명과 해방의 노래 '우리민요'

봄은 어디서부터 오는가. 섬진강 나루 청매실 마을의 매화를 징검다리 삼고 지리산 자락 구례 상위마을의 산수유 꽃으로부터 오는가. 아니면 신춘개각으로부터 오는가.

골로 가면 고사리/ 잡어뜯어 꽃다지

쑥쑥 뽑어 나생이/ 여기저기 미칭개

◈님도 보고 산나물도 뜯고

언제부턴가 도시의 봄은 아가씨들의 옷차림으로부터 온다고 하지만, 서민들의 봄은 밥상에 오른 봄나물로부터 온다는 것이 한층 실감난다. 이제 산나물조차 재배하는 덕분에 때 이른 봄나물을 푸지게 먹을 수 있으나, 전에는 부녀들이 들과 산으로 다니며 일일이 봄나물을 뜯어서 밥상 위에 올렸다. 소녀들은 들나물을 채취하는 데 머물지만 과년한 처녀들과 부인들은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서 산나물을 이불보로 한 보퉁이씩 해 날랐다. 산나물은 한갓 찬거리가 아니라 봄나기 식량이었기 때문이다.

당산네 할맘네/ 작기도 말고/ 많이도 말고

요 소쿠리 종꽁 눌리/ 두 소쿠리만 해줍시다

산나물이 봄 양식이니 사실상 봄농사나 다름 없다. 대보름날 당산나무에다 농사 풍년을 빌 듯이, 봄농사인 산나물도 많이 뜯을 수 있도록 당산할매에게 빈다. '작게도 말고 많이도 말고 꼭꼭 눌러 두 소쿠리만 불려달라'는 데 묘미가 있다. 산나물을 작게 뜯으면 가족들이 굶주리고 너무 많이 뜯게 되면 산나물 씨가 마르기 때문이다.

우리 살림에 보탤라고/ 멧나물 뜯나

총각낭군 만낼라고/ 멧나물 뜯지

처지에 따라서 산나물 하는 일이 봄나들이가 되기도 한다. 끼니때마다 밥상을 차려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주부들과 달리 처녀들은 나물하는 일이 봄나들이처럼 가볍다. '님도 보고 뽕도 따듯' 님을 보기 위해 산나물 하러 가는 것이다.

참나무 모시대/ 살어진 골로~

뒷집에 김도령/ 꼴 비러 가세~

꼴일랑 비어서/ 지게에다 담고~

내 손목 잡아쥐고/ 할 말을 못하니~

딴 생각이 있어 나물하러 가는 처녀는 혼자 가서 별 볼일 없다. 마음에 찍어둔 총각과 같은 날 같은 산으로 가야 밀회가 가능하다. 따라서 김도령에게 참나무골로 꼴 베러 가자고 꾄다. 그러나 정작 산에서 만난 김 도령은 처녀 손목만 쥐고 할 말을 못하니 딱하다. 봄처녀들의 상상력은 이에 만족할 리가 없다. 적극적으로 총각을 끌어들여 마음껏 사랑을 나누고자 한다. 그러한 정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데에는 자아를 객관화한 서사민요가 제격이다.

남산 밑에 남도령아/ 서산 밑에 서처자야

서처자 남도령 거동봐라/ 나물 뜯으러 가자 하고

첫새북에 일어나여/ 머리 빗어 단장하고

남 도령과 서 처자가 나물 뜯으러 가자고 약속을 하고는 첫새벽에 일어나 머리 빗고 단장한다. 닭이 두 홰를 울자 벌써 밥을 짓는다. 아무래도 그들 거동이 예사롭지 않다.

두 홰 울어 밥을 지어/ 서처자 남도령 거동봐라

산 높으고 골 짚은데/ 나물 뜯으러 가는구나

◈더덕은 더듬어가며 캐야

나물 뜯으러 가자면서 자꾸 높은 산으로 간다. 산 높고 골 깊은 곳에 나물 뜯으러 가는 이유가 있다. 산나물이 많이 나기 때문이다. '올라가는 올고사리, 내려오는 늦고사리'에 이어 갖은 나물들이 노래된다.

뺑뺑 돌아 돌개나물/ 아방자방 호박나물

도리도리 삿갓나물/ 접시 보고나 활나물아

맛도 좋은 권두서리/ 빛도 조흐나 참나물

각종 나물을 노래하는 방식이 다양하다. '올곰올곰 미역초라/ 누런누런 삼베나물'처럼 나물의 모양과 색깔을 반복법으로 묘사하는가 하면, '반달반달 반달비야/ 뺑뺑 돌아 돌개나물'처럼 나물이름의 뜻을 풀기도 하고, '맛도 좋은 권두서리/ 묵기 좋다 참나물'처럼 맛을 묘사하는가 하면, '캐기 좋다 물반도야/ 후아잡자 두릅나물'처럼 나물을 채취하는 방법을 노래하기도 한다.

도래 캐는 야야/ 돌아가미 캐라

더득 캐는 야야/ 더듬어 가미 캐라

고사리 꺾는 야야/ 골로 가며 꺾어라

나물 종류에 따라 채취 방법을 한층 구체적으로 노래했는데, '도라지는 돌아가며 캐는가 하면 더덕은 더듬어가며 캐고 고사리는 골로 가며 꺾어라'고 하여, 그 방법을 나물이름에 따라서 재미있게 엮어나갔다.

굳이 높은 산을 찾아가는 것은 나물이 많은 까닭도 있지만, 그보다는 처녀총각이 남의 눈을 피해서 둘만의 호젓한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그러한 조짐은 첫새벽부터 머리를 감아 빗고 몸단장하는 데서 이미 드러났다. 조짐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것은 점심때이다. '물 좋고 정자 좋은 반석에다 점심밥을 풀어놓는데'

남도령 밥으는 꽁보리밥/ 서처자 밥으는 쌀뱁이라

서처자 반찬은 더덕지고/ 남도령 반찬은 띠쟁이라

남도령밥은 서처자 묵고/ 서처자밥은 남도령 묵고

다른 노래에는 서 처자 점심은 '오이씨 같은 쌀밥에다 조기를 발라 놓았는데' 남 도령 점심은 '수박씨 같은 꽁보리밥에 날된장 한 술 붙여 놓았다'고 한다. 작고 흰 외씨와 굵고 검은 수박씨가 쌀밥과 보리밥을 대조적으로 묘사하고, 서 처녀의 반찬은 더덕이나 조기인데, 남 도령의 반찬은 날된장으로 대비된다. 더덕과 조기는 남성을 상징한다. 서 처자는 이를 남 도령에게 주고 자신은 남도령 것을 먹는다. 남도령을 이미 남편 섬기듯 하는 것이다. 더덕과 조기로 남 도령의 성적 힘을 북돋우어 주는 구실도 한다.

다음 일은 뻔하다. 점심을 다 먹고 '백년언약을 맺어보자'고 한다. '처매는 벗어 휘장을 치고/ 헐띠는 벗어서 평풍을 하고/ 단속곳 벗어 요로 깔고' 온 몸으로 백년언약을 맺는다.

처매 벗아 무자 이불/ 단속곳 벗아 요로 깔고

싹티 벗아 이불팽풍/ 저구리 벗아 두통비개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야외에서 훌훌 벗고 정사에 들어간다. '두 몸이 한 몸 되어/ 자고 나여 하는 말이' 서 처자가 애기를 배면 어떡하나 걱정을 한다. 그러면 남 도령은 '뒷감당은 내가 할테니 걱정마라'며 달래지만 말뿐이다. 동네방네 소문은 벌써 났다. 서 처자는 서둘러 '동솥에다 나물을 데쳐 갖은 양념으로 무쳐서' 입막음에 나선다.

동네방네 어르신네/ 서처자 남도령 나물인데

이 나물로 잡수시고/ 숭도 말고 탈도 마소

천년만년 살아가며/ 부모은공 하리다요

◈두몸 한몸되니 뒷감당은 어찌할꼬

이들 사랑은 자유롭고 능동적이되 끝까지 간다는 점에서 요즘 신세대들의 허튼 사랑 같지 않다. 양친부모 섬길 각오까지 한 터라 한 베개를 밴 것이다. 나물하러 간다는 핑계로 처녀가 총각을 꾀어 혼전 성행위를 즐기지만, 호사를 누리고자 돈 많은 어른들을 꾀어 원조교제를 즐기는 소녀들의 불장난과는 다르다. 서 처자는 자기 몸의 진정한 주인으로서 주체적인 사랑을 하지만, 원조교제하는 소녀들은 자기 몸을 상품화하고 객체화할 따름이다.

원조교제처럼 사랑 없는 성행위가 한갓 매춘이자 성욕의 충족이듯이, 서로 이념이 다른 정당끼리 정책 공유 없는 원조연정은 패거리 정치꾼들의 하룻밤 야합이나 다름없다. 끝까지 함께 할 의사가 없는 정당끼리 기회주의적으로 장관자리를 나누어 누리는 것은 한갓 매관매직이며 권력욕의 집착일 따름이다. 더군다나 한빛스캔들의 주역이 청와대 정책수석으로 다시 등용되고, 의약분업 정책의 책임자가 불과 석 달만에 다시 여당 정책위의장으로 복귀하였다. 상큼한 봄나물 같은 신춘개각을 기대했던 국민들로부터 김 대통령 인사는 늘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논평이 나올 만하다. 봄나물이 무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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