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년에 걸쳐 경북지역을 강타했던 수해가 물고기와 물새까지 쓸어 가 버렸다. 뭉개져 버린 둑을 되만드는 과정에서 시멘트가 흙 대신 차고 앉아 버렸기 때문.
1998년, 1999년, 2000년 등 3년에 걸쳐 수해를 크게 입은 의성 지역 경우, 복구 과정에서 대부분의 하천 둑을 높이고 폭을 넓히는 등 변화가 있었다. 여기에 든 돈은 무려 1천40여억원. 하지만 이 과정에서 바닥의 자갈.모래는 둑 높이기에 사용됐고, 구석구석 자리 잡았던 습지는 사라지고 황량한 하천만 덩그러니 남았다.
게다가 홍수 때의 유실에 대비해 둑을 콘크리트 블록으로 촘촘히 쌓아 하천이 거대한 콘크리트 벽으로 변했다.
◇물고기 조차 살곳을 잃고 = 매일신문 취재팀이 전문가와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 현장을 다녀 봐도 물고기 조차 드물어진 것이 확실했다. 고기 잡이를 생업으로 하는 김성열(58·비안면)씨는 "인근 하천 물고기가 갈수록 줄어 고기잡이를 포기했다. 강원도 등 다른 곳에서 물고기를 잡아 와 팔고 있다"고 했다.
복구공사의 영향이 얼마나 큰지는 금방 비교됐다. 남대천(의성읍∼봉양면) 중 개량복구된 구간에선 물고기가 크게 줄었거나 거의 살지 않는 것으로 취재됐다. 쌍계천(춘산∼봉양면) 중에서도 공사가 끝난 봉양면 일산지역 등에선 물고기 집과 습지 등 생태계가 파괴돼 많잖은 종류의 물고기만 명맥만 이어가는 정도였다.
그러나 남대천 중에서도 돈이 모자라 아직 복구공사가 시작되지 못하고 있는 봉양면 문흥리 천동보 일대 등 일부 구간에서는 물고기가 발견됐다. 쌍계천 미복구 구간인 금성면 금성면 구련리, 봉양면 장대·구산·화전·안평리 일대, 비안면 쌍계.현산 지역에는 물고기가 살고 있었다.
◇물새가 사라졌다 = 이렇게 모습이 바뀐 뒤, 물고기가 거의 찾아 보기 어렵게 돼 버렸다. 물총새·호반새·물새·종달새 등 새들 마저 줄었다. 물총새와 호반새 등은 흙둑에 구멍을 뚫고 사는 희귀종이다. 종달새.물새 등 텃새들 조차 하천에서는 터전을 잃었다.
하천변에 사는 신동석(44, 봉양면 장대리)씨는 "몇년 전부터 물총새.호반새는 고사하고 그 흔한 물새.종달새 조차 사라져 이제는 물 가에서 새들을 보기가 어려워 졌다"고 했다. 조류학자 박희천교수(경북대)는 "최근 앞다퉈 하천 제방을 콘크리트 호안 블럭 등으로 교체하는 바람에 환경부 보호 수종인 물총새.호반새 등 조류들 마저 사라지지 않을 수 없다"고 진단했다.
이에따라 박교수는 "하천을 개량 복구할 때 물고기.새 등이 살 수 있도록 제방을 돌망태와 잔디 등으로 쌓는 등 생태계 보호에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최근 쌍계천 봉양면 구간에 서식하는 것으로 공식 확인된 수달도 상류지역의 하천이 개량 복구돼 물고기가 사라지자 하류로 이동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국가적 관심 긴요 = 이런 상황은 전국적인 것이다. 폭우.태풍 등의 수해를 복구 중이거나 이미 복구한 상주.안동·군위·봉화·예천 등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의성군청 건설과 박준광 과장은 "역내 하천에는 모래와 자갈이 많아 둑을 돌망태로 축조하면 또다시 유실될 우려가 커 콘크리트 호안 불록으로 시공하고 있다"며, "물고기.새까지 고려하면서 복구하려면 돈도 훨씬 많이 들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부 자연정책과 이 분야 담당자인 남상기씨는 "자연친화적인 하천 정비는 많은 돈을 필요로 해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행자부.건교부 등 관계 부처와 협의해 앞으로는 생태계도 보호하는 자연친화적 공법이 도입되도록 유도하겠다"고 말했다.
이웃 일본에서는 하천의 자연생태계 보호를 위해 옛날에 블럭으로 만들었던 둑을 지금 와 다시 뜯어 내고 있다.
의성·이희대기자 hdle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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