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대 복학생 강민수(식품가공학과 2년)씨의 하루는 새벽 5시30분에 시작된다. 대구 복현동 집에서 시내 학원까지 가려면 그래도 빠듯하다.
새벽 버스 다음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80분짜리 영어 수업. 끝나도 커피 한 잔 마실 시간이 없다. 경산의 학교까지 한 시간이나 버스를 타야 하기 때문. 수업은 하루 5~6시간 정도이지만, 그것으로도 끝이 아니다. 다음은 도서관. 밤 10시는 돼야 집으로 향한다. 몸을 눕히는 시간은 대개 다음날 0시가 넘는다. 매일을 새벽에 잠들고 새벽에 일어나는 것.
"요즘엔 학원 안가는 대학생 없습니다. 고교 때 이렇게 공부했더라면 서울대라도 갔을 겁니다. 대학에 와서, 그것도 복학하니까 취업 전쟁이 실감나더라구요. 3개월째 학원 다니고 있습니다. 입대 전에 일년치(60만원)를 끊어 놨으니 9개월은 더 다녀야죠".
'대학'과 '자유'를 동의어로 생각하는 고3들에겐 미안한 얘기. 하지만 '놀고 먹는 대학'은 이제 옛날 말이다. 사교육의 시퍼런 사슬은 어김없이 대학생까지 옥죄고 있다.
영어·컴퓨터·공무원고시·교사고시. 자유로운 학문 탐구는 없어졌다. '취업=사교육'이라는 공식에 짓눌려 비명이나 지르고 있을 뿐. 취업 준비는 학년 구분이 없는 전면전이다.
"수시·특차 합격자들이 입학을 몇달 앞두고부터 대학 내 어학당에서 토익·토플 강의를 듣는 세상입니다. 발빠른 고3들은 대학이나 학과가 취업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걸 이미 아는 거죠. 3, 4학년들의 위기감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경북대 어학당을 관리하는 강지윤(35)씨의 말.
이 어학당의 프로그램들은 거의 2개월 과정 130개반. 모집 수강생이 2천600여명에 달한다. 그러나 정원에 미달하는 일은 없다. 오전 7시40분 강의는 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반. 수강 신청이 시작되기 무섭게 자리가 동난다.
대구시내 영어학원들의 가장 큰 고객도 대학생이다. 직장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토익·토플반 수강생의 절대 다수는 이들. 한달 수강료 6만~8만원, 1년 다니려면 수강료만도 100만원 정도를 부담해야 한다. 영어학원은 그나마 싼 편. 취업 필수품인 컴퓨터 자격증 강의 수강료는 한달에 10만~20만원에 달한다. 비싼 것은 50만원이나 되는 곳도 있다.
수강료는 어떻게 마련할까? "아르바이트 해서 번 돈을 대학생들이 유흥비에 쓴다구요? 부자 부모 만난 학생들은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러나 보통 학생들이야 매학기 등록금만도 200만원이 넘는데 학원비까지 손 벌릴 순 없잖아요? 새벽에 영어학원 가는 대신 저녁엔 커피숍·식당 등에서 밤 늦게까지 일하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계명대신문사 편집국장 박지현(통상학부 3년)씨는 "대학은 간판에 불과하다"고 단정했다.
학원비를 마련하려면 아르바이트 수입이 필수라는 대학생들. 중고교생이나 부담하는 줄 알았던 사교육비가 대학생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사교육의 서글픈 단면. 그래서 박씨는 대학이 그냥 간판이 아니라 "허상뿐인 간판"이라고 했다. 학원비에 골병 드는 학생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대학, 영어 전공자들조차 학원에 다녀야하는 현실…. 그런데도 대학 교과과정은 수십년째 요지부동이라는 얘기로 들렸다.
물론 일부 대학은 토익·토플을 정규 교과과정에 넣기도 했지만, 대학생들은 이 과목의 점수를 잘 받기 위해 또 학원으로 향한다. 악순환에 악순환인 셈.
사범대생이나 교직과목 이수자들은 3학년 때부터 교사 임용고시 학원에 나가고 있었다. 공교육을 담당할 예비 교사들이 사교육에 의지해야 하는 이상한 풍경까지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교직 과목을 학원에서 다시 듣는 학생도 많아요. 방학이나 아니면 아예 휴학하고 서울 고시원에 들어가 학원에 다니기도 하죠. 수강료도 100만원이 넘습니다. 교직과목 이론반은 30만원, 문제풀이반은 20만원, 모의고사반은 10만원, 전공과목은 20만원 이상 내야 합니다". 경북대 사범대를 졸업한 이모(25)씨는 지난해 시험에서 떨어져 올해 재수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도 대학들은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상아탑이 취업 준비기관으로 전락할 수는 없다"는 것이 논리. 그러나 그러는 사이에 공교육 위기는 중고교에서 대학으로까지 급속히 번지고 있었다. '교실 붕괴'만이 아니라 '캠퍼스 붕괴'가 깊이 진행돼 있는 것이다.
김수용기자 ks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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