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변화하는 대중문화

북한 주민들의 문화생활이 다양해지고 있다. 그동안 획일적이고, 어둡고, 딱딱하기만 했던 주민들의 문화생활에 다양성과 함께 오락적인 요소가 가미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올들어 눈에 띄게 가속화되고 있다.

지난 2월 중순 개원한 평양바둑원은 문화생활의 변화를 보여주는 구체적 사례의 하나로 꼽힌다. 북한이 바둑의 대중화를 공식적으로 부르짖고 나선 것이다. 북한에서 바둑은 80년대 후반 '정책종목'으로 지정되기는 했지만 주민용으로 일반화된 것은 아니었다. 중국·일본과의 교류 내지 외화획득을 위한 일종의 '엘리트 스포츠'로 키워졌을 뿐 주민들에게는 '비효율적인 스포츠'라고 해서 활성화되지 못했다.

지난 2월 말 대중악기전시회를 개최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대중악기란 말 그대로 전문예술인이 아닌 일반인들이 여가 또는 취미생활 차원에서 다루는 악기를 말한다. 따라서 대중악기전시회는 일반 주민들의 문화생활을 좀더 다양화시키고자 하는 북한 당국의 의도가 깔려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북한에서는 대표적인 대중악기로 하모니카, 기타, 손풍금(아코디언) 등이 꼽혀왔다.

북한에서는 물론 나라 밖에서도 최고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평양교예단에서 새로운 레퍼토리를 개발하고 있는 것 또한 주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려는 뜻으로 풀이된다. 평양교예단의 새로운 레퍼토리에는 '우주를 정복해 나가는 여성 조종사'를 소재로 한 작품도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양에 생맥주 공장이 세워지고 있는 것도 변화의 한 면으로 음미할 만한 대목이다. 음주문화가 아직 일반화되지 않은 북한사회에서 생맥주 공장의 건설은 이를 양성화하는 쪽으로 비쳐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생맥주는 주로 소주나 인삼술, 들쭉술 등과는 달리 젊은층을 주 소비대상으로 삼을 것으로 보여 청년문화의 새로운 패턴을 엿볼 수 있게 한다.

또한 노래방도 인기를 얻고 있다. 노래방은 지난 92년 등장한 이후 '화면반주 음악홀'로 불리며 평양에만 약 20여개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가장 규모가 큰 곳은 평양청년중앙회관내의 노래방으로 한꺼번에 250명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북한 노래방의 특징은 남한과는 달리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노래방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노래 종류 또한 다양하다. 북한에서 가장 인기있는 '휘파람' 등의 노래부터 약간 개사된 '아침이슬' 등 남한가요는 물론 '예스터데이' 등 팝송도 부를 수 있다고 한다.

이밖에 지난 2월 중순 김정일 위원장 생일행사의 하나로 수중발레 공연을 가졌던 것 또한 문화생활에 오락성을 가미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 스포츠지만 수영복 차림의 여성이 집단으로 등장한 것은 북한사회에서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기준으로 보면 수영복 차림의 여성은 몇년전만 해도 선정성 시비에 휘말렸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더구나 이 수중발레 공연은 TV 화면으로까지 소개됐다.또 최근에는 기존의 다이아몬드, 하트, 클로버 그림을 대신해 음정과 리듬, 오선악보를 그려넣은 트럼프와 똑같은 크기의 카드를 이용한 '음악주패놀이'를 개발, 보급하고 있다.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주민들의 문화생활에 이 같은 다양화와 오락성 가미는 정치적인 의도가 숨어 있는 것"으로 평가하면서도 "문화란 한번 형성되면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문화정책이 전반적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최재수기자 biocho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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