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낡은 대구는 가라

요즘 대구가 매우 어렵고 힘들다. 경제가 어려워진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요사이엔 흉악범죄도 많고 불미스런 사건들도 줄줄이 터진다. 내로라하는 대구의 대표기업들이 부도나고 워크아웃되고 퇴출되면서, 실업이 늘고 민심도 흉흉해진 탓일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 대구가 어렵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가까운 장래에 대구 사정이 좀처럼 낳아질 것 같지 않다는 데 있다. 답답하기만 한 대구의 정치와 경제와 교육을 바로잡을 특단의 비전을 제시하면서, 희망을 주는 믿음직한 리더십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흩어져 있는 대구시민의 지혜를 모아낼 정신적 구심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역 정치권에는 흉흉해진 민심을 표몰이에 이용하려는 정략적인 정치인들뿐이다. 그들은 늘 입으로만 대구를 걱정한다. 관료들은 어려운 대구 경제가 중앙 탓이요, 부산과 호남 탓이라고 늘 남 탓만 한다. 대구의 기업인들은 경쟁력을 추락시킨 구시대적 경영관행을 여전히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으면서, 꼴사나운 주도권 다툼에 아까운 날들을 허송한다. 안타깝게도 대구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교육계마저 크게 다르지 않다. 구시대의 독선이 여전히 적지 않은 교육현장들을 황폐하게 만들고 있다. 실의에 빠져 있는 대구시민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정신적 지도자도 찾아보기 힘들다. 정치, 행정, 경제, 교육 등 모든 부문에서, 낡은 사고와 관행과 문화가 상층부의 리더 그룹에 팽배해 있는 것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지금 대구가 어려운 것은 오래도록 대구를 이끌어온 정치, 행정, 기업, 교육계 부문의 낡은 리더들 탓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YS와 DJ, 부산과 삼성에 문제가 있고 책임이 없지 않더라도, 그것은 부차적이다. 그들을 탓하고 정권을 욕하면 잠시 시원할 수는 있어도, 애초에 잘못짚은 진단이기에 대구를 살려낼 해법을 찾을 수는 없다.

그런데도 대구의 내로라하는 지도자 누구도 지금 실의에 빠져 탄식하고 있는 250만 대구시민 앞에서 반성하지 않는다. 수십년간 권력을 잡고, 한 때 250만 대구시민 몫으로 장관하고 차관하고 국회의원했던 이들 누구도 자신에게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고백하지 않는다. 지방자치단체장과 지방 의원들 가운데 겸허하게 자신의 한계와 무능을 참회하면서 용퇴하는 이를 본 적이 없다. 모두들 자기 탓은 없고 중앙정부가 잘못한거고 애꿎은 지역민 탓이라고들 큰소리친다. 대구를 살릴 비전은 갖고 있지 못하면서 자기밖에는 대구를 이끌 사람이 없다고 또다시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권력자에 줄대고 남헐뜯기에 바쁘다. 스스로를 고통스럽게 변화시키면서, 모두 함께 변화하자고 호소하는 진정한 애국적.애향적 리더를 볼 수가 없다. 대구 민중의 아픔을 함께 나누면서, 머리맞대고 해법을 찾아보려는 진솔한 리더십을 만나보기가 너무도 어렵다. 이것이 우리 대구의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요, '대구 문제'의 핵심이다.

우리 스스로 책임을 통감하는 도덕적 성숙을 회복해야 한다. 새로운 대구를 건설하기 위해 우리 자신이 감당해야 할 책임과 몫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대구의 미래를 옥죄는 우리 내부의 낡은 패러다임을 청산해 가야 한다. 모두가 자기 잘났다고 목소리 높이며 남을 헐뜯는 낡은 관행을 청산하지 않으면 안된다. 250만 대구시민 모두가 그래야겠지만 이 일이야말로 리더그룹이 앞장서지 않으면 안된다. 낡아빠진 대구의 정서를 볼모로 다한 생명을 연장하려 들지 말아야 한다. 대구의 리더들부터 자신 내부의 낡은 대구를 버려야 할 것이다. 낡은 대구를 이겨야 새 대구가 살아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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