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하는 오후

해는 출렁이는 빛으로내려오며

제 빛에 겨워 흘러넘친다

모든 초록, 모든 꽃들의

왕관이 되어

자기의 왕관인 초록과 꽃들에게

웃는다, 비유의 아버지답게

초록의 샘답게

하늘의 푸른 넓이를 다해 웃는다

하늘 전체가 그냥

기쁨이며 神殿이다

해여, 푸른 하늘이여,

그 빛에, 그 공기에

취해 찰랑대는 자기의 즙에 겨운,

공중에 뜬 물인

나뭇가지들의 초록 기쁨이여

-정현종 '초록 기쁨-봄숲에서'

◈4월이다. 천지에 초록이 본격적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4월 초록은 4월의 태양이 있어야 가능하다. 이것은 시인의 전언이다. 인간사도 마찬가지이다. 타자가 있어야 내가 있다. 주체는 타자의 반영이다. 이 사실을 사람들은 쉽게 잊어버린다. 그래서 독불장군이 생긴다.

그러나 이 시인이 말하려는 것은 이런 골치아픈 이야기만은 아니다. 하늘 전체를 그냥 막무가내 기쁨과 신의 궁전으로 만드는 태양과 초록에 대한 싱그러운 경배이다. 오늘 하루는 봄숲에 나가 햇빛과 하늘향기와 나무향기에 전신을 맡겨 보라는 시인의 말씀이다.

김용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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