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와 삶-'신비의 유물'팔만대장경

필자의 전공은 고고목재학(考古木材學, Archeological wood)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처음 들어보았을 성 싶은 희귀한 학문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나무로 만든 문화재의 재질을 알아보고 그것을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70년대 중반 일본 교토에서 미술사를 전공하는 한 젊은 학자와의 조우가 필자의 연구방향을 돌려놓은 계기가 되었다. 그는 경주박물관장을 역임하고 지금 이화여대에 가있는 강우방 교수였다. 그와 같은 기숙사에서 1년 동안 생활하면서 문화재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눈뜨게 해주었다. 그때까지 전자현미경으로 나무의 세포 모양새나 눈 빠지게 쳐다보는 목재조직학이란 학문에 지쳐 있던 필자에게는 '아하 이쪽으로 빠져나가면 눈도 덜 아프고 재미도 있으며 의의도 찾을 것 같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방향을 돌려 잡았다.

학위을 끝내고 귀국해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갈 즈음 마침 2만여점의 도자기 등 보물을 싣고 가다 전남 신안군 앞 바다에서 침몰된 중국무역선, 일명 신안 보물선의 선체(船體)조사를 맡게 되었다. 중국 남부에 자라는 나무로 배가 만들어 진 것을 밝혀 이 선박의 항로추정 자료를 제공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 91년경에는 발굴 후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던 공주의 무령왕릉의 관재 조각을 분석, 이 나무가 일본의 남부지방에서 가져온 금송(金松)임을 밝혀 낼 수 있었다. 이는 백제와 일본과의 관계를 구명하는 귀중한 근거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무엇보다 지난 1993년 단일 나무 문화재로는 세계 최대라고 할 수 있는 해인사 팔만대장경판과의 맺은 인연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8만1천258장에 무게만도 280t에 이르는 민족의 대역사를 마치고도 믿을 만한 기록하나 제대로 남겨놓지 않은 이 신비의 유물의 진실을 밝히는 일이 이제 필자의 마지막 업보로 주어져 있다. 750년 전의 나무가 고스란히 남아있으니 이를 붙잡고 비밀의 열쇠를 하나 하나 찾아 내야한다.

이런 저런 인연으로 거의 30년에 걸쳐 멀리는 점말동굴의 선사시대 유적을 비롯하여 통도사 대웅전의 기둥까지 수많은 나무 문화재들이 고고목재학이라는 연결 고리로 필자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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